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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ug 01. 2019

남편, 나의 인생 멘토, 멘토의 조건

멘토의 조건

1999년쯤, 나는 그때까지 하던 학원 일에 지쳐있었다. 매일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내 삶의 염증 같은 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던 나는, 학원 일을 그만두고 저축해 두었던 종잣돈으로 어딘가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학생들만 가르쳤던 내가...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결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매일 다른 일을 해 보겠다고 순간순간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삶의 일탈... 그렇게 내 인생은 또 하나의 전환 점에 서 있었다.


(그러나 뽕잎 벌레는 뽕잎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ㅜㅜ)       

삼성 코엑스 쪽에서 무역 박람회가 열려 좋은 기회가 있을까 하여 나갔다가 받아든 명함 한 장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당시에 무역업을 하면서 중국에서 의료기계를 수입하고 있었는데 유통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의 질문에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결국은 유통이라는 것은 경험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옳지 못한 선택을 했다면 나는 아마 재기불능 상태까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그 명함 속의 사람은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인생 동반자로, 인생 멘토로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를 만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훌륭한 부모님을 멘토로 두는 경우는 천운이라고 할 만큼 복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을 인생의 멘토로 두는 경우도 많은데 그 또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처럼, 동반자 겸 인생 멘토를 만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인연들이 만나 서로에게 힘을 주고 영향을 주는 멘토들을 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인생 멘토가 있다. 단, 스스로 인식을 하지 못할 뿐.
그러나 늘 우리의 주위에는 나를 올바른 곳으로 안내해 줄
멘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 손만 내민다면... 단지 그럴 용기가 없을 뿐이다




인생 멘토 / 반대되는 이야기도 솔직하고 진솔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사실, 어이없을 만큼 잔인하게 말을 한다. 그 잔인함 때문에 너무 속상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잔인함이란 현실을 직시하는 예리함, 그리고 돌려서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에서 나오는 솔직함,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냉철함 덕분에 일을 그르칠 수 있는 거의 모든 순간들을 비껴갈 수 있었다. 거의라 함은 나의 고집으로 선택한 결과를 제외한 것이다. 나의 고집이 선택한 결과는 근시안적인 눈으로 바라본 덕분에 늘 손해나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다. 그래서 그 뒤로는 독단적인 결정을 하기보다 항상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자문을 구하는 편이 되었다.  




인생 멘토 / 적어도 자신보다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군대를 제대하고 냉동식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친구가 빌려준 200만 원을 가지고 단독주택 지하에 사무실과 오토바이를 구입해서 냉동식품의 '냉'자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발로 뛰었다. 30여 년 전, '천하 유통'이라는 간판을 걸고 냉동 돈가스 유통을 시작했다. 오토바이 사고는 밥 먹는 수준이었고, 트럭 밑으로 들어가거나, 차에 치여 온몸이 공중 부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인지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있다.


사업을 하면서 모아온 명함만 수 만장, 라면 박스 3박스에 가득한 명함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덕분일까.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른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경험으로 체득한 통계로 조금 더 명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1990년대, IMF를 맞으면서 중국에서 들여오던 의료기계 사업에 큰 타격을 입어 결국 부도를 맞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어느 정도 빚 청산을 하고 남은 것은 고작 차 한 대가 전부였다고. 그리고 경제 사범으로 몰려 구치소에 있었던 3개월 동안 억울함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온몸은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그때 치아가 뿌리까지 녹아내려 현재는 치아 12개 이상을 임플란트가 대체하고 있다.

           

(12대의 임플란트.. 미역 종류와 버섯 종류 음식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미끄덩~ 미끄덩~)    

                        

그 뒤로 찾아온 건강 악화, 신장에 이상이 생겨 시한부 3개월이라는 선고를 받고 병원이 아닌 지리산 산 속으로 들어갔고, 지금까지 나름 건강하게 살아오고 있다. 그 이후의 일을 말하자면 신기한 일도 많고 수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삶 전체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지리산 속에서 만난 인연들, 그리고 이어진 수많은 대화. 그리고 구치소에서 만난 각종 경제 사범들과 마약 사범들의 삶의 이야기, 건강 악화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공부하게 된 수많은 의학 책과 건강 서적, 그리고 건강식품들에 대한 정보들....  

           

(가끔, 지리산 이야기를 꺼낸다. 전직 목사, 전직 학자, 수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수행을 한다고...)

                            

남편은 어쩌면 우리가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직접 접했던 것이다. 남편이 살아온 이야기는 소설을 써도 모자 판이지만 그 덕분에 남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구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어 언제든지 의견을 묻게 된다.  

                


인생 멘토 /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너무 솔직하게 문제점을 밝히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상대가 무안할 것 같은데도 나이에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는 의아하기만 하다. 나이가 70이 넘은 어르신이나, 동년배 사업가나, 후배...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이야기를 꺼내 혼이 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마음으로 수긍을 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만남을 이어오며  마음의 허물이 사라지는 그들의 관계를 보면서 솔직함 뒤에 묻어나는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다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약점은 나를 성장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진정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은 '누구나 YES!를 외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몸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쓰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쓰디쓴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기에. 그 마음의 이면에는 따뜻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좋은 말만 하고 싶지... 그러나 말을 안들어..
그러니까 쎄게 이야기 할 수밖에.. 그래야 정신차리고 다시는 안그럴테니까...
나는 그게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얼핏 보기에는 고집스럽고 독불장군처럼 보여도 소신 있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제는 속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늠해 보게 된다. 나는 다행히도 인생 멘토를 동반자로 만났다. 스스로 그렇게 여기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는 인생 동반자로 살면서 또한 인생 멘토로서 인정하고 있다.     

                       



인생 멘토 / 그도 실수하는 하나의 인생입니다. 그러니 그를 통해 나의 시야를 넓히고 성장해야 합니다.


요즘은 남편이 나를 보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울 마누라가 많이 컸네...'


이 말은 예전과 다르게 나의 주장을 남편에게 피력하고 있을 때 하는 말이다. 전에는 그저 혼나듯 듣기만 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남편의 의견에 나의 의견을 덧붙이고 살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남편의 말이 전적으로 다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올바른 판단이 흐려질 때도 있다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조금 더 경험을 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실수하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할 이유도 없고 불평할 이유도 없다. 그렇게 서로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의지해 가는 동반자가 되고 있다. 삶은 성장해야 한다.


어쩌면 인생 멘토를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존경스럽고 때로는 멋지고. 그리고 때로는 실망도 하고. 나와 맞지 않는 조언으로 고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인생일 뿐. 그 점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넓은 시야를 갖는 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든 것을 배움의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성장할 수 있다.

         

멘토의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멘토의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는 더 넓은 그릇이 되는 것. 그것이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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