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Jul 31. 2019

나의 인생 멘토, 삶

아빠는 간경화라는 오랜 지병으로 병원에 계시다 1998년 10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아빠와의 추억이 꿈에 나타난다. 내 기억 속에 아빠는 멋진 장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아빠... 아버지라는 무게감이 주는 이름보다 아직까지 아빠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다. 아직은 좀 더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 어딘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버지 대신 아빠라고 부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집안의 가장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군 제대를 하면서 사기를 당해 잘못된 투자를 했고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겨우 몸을 누일 만큼의 단칸 방. 엄마는  사모님에서 졸지에 '보험 아줌마'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사실, 엄마도 그저 남편 뒷바라지만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전업주부였다.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 때문에 삶이 팍팍하게 군다고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다. 나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는 사치였다.      

      

사회라는 곳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언제든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이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단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군이라는 폐쇄된 조직에 있다가 사회를 접한 초년생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사기당한 군 장교' 얘기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아주 먼 훗날 엄마를 통해 들었다. 엄마는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조금 더 일찍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사회라는 것을 좀 더 많이 배웠을 것 같다. 


어쩌면 사회라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 시험대 같은 곳이다. 호시탐탐 내 비위를 맞추며 내가 움켜쥔 것을 빼앗으려고 노리는 이리들이 있다. 나는 그 이리들을 이기는 힘은 내가 그 이리들보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아예 상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회에서 이리를 상대하는 법 / 
이리의 정체를 미리 알아야 한다. 이리보다 똑똑해야 한다. 
그리고 아예 이리 근처에는 서성이지 말아야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학과의 전산실 조교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퇴근과 동시에 새벽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업이 없는 날은 병원으로 달려가 아빠를 만났고 집 안일도 간간이 보살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돈을 벌겠다고 사회에 뛰어든 첫째 동생과 대학을 갓 들어간 새내기 막내 동생까지. 


나는 늘 생각했다. 내 인생 좌우명은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 고생은 젊어서 하는 거다. 나이가 들어서는 고생은 없다. 그래서일까. 정신적으로는 늘 고요했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정신은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는 방패막이 있는 것처럼, 마치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내가 감당해야 할 고생의 수치가 있다면
지금 이 시기에 다 겪어 볼테다!




엄마는 아빠 병원비 마련을 위해 보험 일을 하면서 간병까지 해내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아침 출근하는 시간에 지하도를 내려가다 사람들에 치여 계단을 굴러 넘어지셨다. 그 일로 발 목 뼈가 부러졌고 인근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날부터 병원이 두 군데, 서로 거리가 있던 터라, 이쪽 저쪽을 다녀야 해서 몸은 더 피곤했지만 정신은 늘 어딘가에 붙들려 있는 것처럼 흔들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
각각의 인생에 정해진 고생의 양이 있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고생의 양을 젊어서 다 써버리고 싶다.



엎친 데 덮친다고 할까. 간신히 피곤한 몸을 뉘여 눈을 붙였던 시간은 새벽 2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 간신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벨 너머로 들리는 낯선 음성.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느낌까지 들게 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동생의 이름을 대면서 '** 씨 가족이냐'라는 질문과 함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이라는 소개를 했다. '동생분이 다치셨는데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잘못됐다! 
얼마나 다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래... 살아있는 것은 확인했으니까... 다행인 건가??


새벽,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동생을 한참 동안 찾았다. 이미 여러 명이 빨간 핏자국이 선명한 시트에 덮여 있었는데 하루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안내를 받아 동생이 누워있는 간이침대로 향했다. 넓지도 않은 응급실에서 동생을 못 찾다니... 말이 안 돼!! 


나는 동생을 보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온몸이 여기저기 다 찢겨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살갗이 찢겨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오른쪽 가슴도 살갗이 다 찢겨져 갈비뼈가 보였다. 일단, 널브러져 있는 피부를 살포시 가슴 위로 덮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오른쪽 눈도 역시 다 찢겨져 얼굴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다행히도 눈동자는 비껴갔다고 응급실 레지던트가 설명해 주었다. 이건....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고 실려온 병사를 보는 듯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다른 어떤 표현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녀석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었고 그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어린 마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고가도로를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린 덕분에 커브를 돌때 조심하라고 만들어 놓은 노란 간판들을 온몸으로 쓸고 지나갔다고... 그리고 다행히도 고가도로 밑으로 추락한 것은 오토바이뿐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녀석은 병원에서 자신의 젊은 생애를 함부로 놀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니. 그 후유증은 평생을 함께하며 지금도 온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동안은 이러한 사실을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 다들 힘든 고비를 넘고 있었기에... 동생은 곧 수술에 들어갔다. 허벅지의 살을 떼어다 가슴에 이식했다. 다행히도 아직 젊은 나이라 회복이 빠른 편이었지만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들었다. 옆에서 드레싱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화장실로 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나는 동생의 눈가에 애꾸눈 선장처럼 사선으로 그어진 흉터를 볼 때마다 동생은 과연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해진다. 후회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을 돌아보는 교훈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삶,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은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의 몫은 나에게 있다.      
 

                    



되돌아보니... 삶은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는 멘토였다.             

       

정신없는 시간이 흘렀다. 엄마도, 동생도 건강을 회복했고, 아빠는 고통의 시간을 멈추었다. 지금은 주마등처럼 지나버린 기억들이지만 나는 그 시간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나에게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나는 이 시간들을 멀리서 관조하듯 바라보고 있을 날이 올 것이라고... 늘 그렇게 스스로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고통... 나는 그것이 육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육체가 힘들어도 정신이 고요하면 육체는 고요 속으로 따라들어간다. 큰일을 당했을 때조차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정신의 고요함 덕분에 오히려 차분해질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능률이 높아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의 순서가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삶은 고통을 견디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희망을 선물한다.
병 주고 약 주고... 


나는 믿는다. 지금 당장 나쁜 일이 생겼더라도 당황하거나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말자, 삶은 내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기를 좋아한다. 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항상 검토하고 있다. 고통이 가중될수록, 내게 돌아올 삶의 희망과 선물은 그만큼 큰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지금 사회를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삶이 힘들다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고통의 양보다 더한 희망과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대하면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고통이 먼저 찾아온다는 것. 그래서 버텨내기를 바란다. 


삶은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항상 먼저 시험을 한다. 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삶은 나에게 거대한 멘토다. 이제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거대한 멘토의 가르침을 나는 몸소 경험으로 배우고 있지만 삶은 내가 좀 더 현명하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해 주고 있다. 많은 이들의 삶 자체가 바로 거대한 인생 스승이자 인생 멘토라는 것을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