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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7. 2019

책가방과 추억의 도시락

내 남자 이야기 (08)

(지금은 어느 집이나 볼 수 있는 냉장고. 그러나 예전에는 냉장고 가진 집은 부잣집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야 했던 시절, 교복을 입고 책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도시락... 혹시 도시락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남편의 학창 시절 짠내 나는 이야기...)


우리 집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냉장고가 없었다. 대부분 집에는 냉장고가 하나씩 들어와 얼음도 얼려 먹고 시원한 물도 마시며 신기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 우리 집은 냉장고의 '냉'자도 꺼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사시사철 대부분의 음식들은 소금기 가득한 음식들이었다. 특히 더운 여름이 다가올수록 음식이 금방 상하기 때문에 쉬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엄마는 일부러 음식을 더 짜게 만드셨다. 간장에 조리고 소금에 절이는 음식들이 주를 이루었다.


덕분에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변하지 않는 두세 가지 반찬을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다녔다. 신 김치, 감자조림, 콩자반을 볶은 후 남은 간장. 그 외는 가끔 아주 색다른 반찬이 끼워져 있기도 했다. 나는 똑같은 반찬에 이미 이골이 나 있었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었던 터라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그러나 문제는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에는 등하교 시간에 수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만원 버스에 몸을 간신히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버스 안내양이 닫히지도 않은 버스 문을 양팔로 잡고 버티고 서서는 "기사님~ 오라이~!!"를 외쳤던 시대였다. 학생들은 좁아터진 버스에서 온몸을 부딪기면서 간신히 버티고 서 있기도 하고 구부정하게 난간에 매달려 가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책가방은 밟히기도 하고 머리 위로 들리기도 하고 자리에 앉은 친구의 무릎 위로 산을 쌓아 두기도 했다. 그러니 책가방은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일쑤였다. 조심스럽게 놓여있다가도 위로 차곡차곡 놓이는 책가방에 눌리기도 하고, 옆 사람에게 밀려 압박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킁킁~ 어... 이거 김칫국물 냄새 아냐~!! 누가 김치 국물 쏟았나 봐!!!"


내심 내 책가방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분명히 이런 일을 대비해 책과 책 사이에 도시락과 반찬통을 잘 끼워 두었는데 혹시 잘못해서 국물이 흐른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일단 학교에 등교하기까지는 절대 가방을 열지 않았다. 버스에서나 길거리에서 가방을 열었다가 쪽팔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여는 순간, 그 김칫국물 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ㅜ.ㅜ


"허걱!! 큰일이다..!! 책이랑 노트가 다 김칫국에 빨래가 됐네..."


가방 안에 나란히 끼워놓은 도시락과 반찬통과 책과 노트는 뒤엉켜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김치 국물이 흘러나왔고 거기에 밥 물까지 흘러나와 책과 공책을 붉게 물들였다. 거기에 교과서가 말라붙어 한데 엉켜버렸다. 으.... 가방 안에서 희한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렇게 악몽 같은 도시락 사건이 있은 후, 엄마에게 도시락을 싸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연신 두들겨 맞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가방 안에서 함께 뒹구는 책과 노트는 김치 국물이 다 말라갈 때 즈음, 다시 간장 국물에 흠뻑 젖었다. 그리고 다시 말라서 쭈글쭈글거릴 때 즈음 다시 젖고, 또 젖고... 그렇게 누렇게 변색되어가는 교과서는 목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때 반 친구들은 그렇게 시어 빠진 내 도시락 속 신김치를 함께 먹어 주었고, 간장밖에 없는 반찬통을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도 맛있다고 함께 밥을 비며 먹기도 했다.


"야~ 너네 집 간장~ 진짜 맛있어~^^"

© ppkpichch, 출처 Pixabay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을 그 시절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다. 그리워진다.


요즘은 왕따를 당하고 학교 폭력이 난무하다. 내가 자랄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학교생활을 들을 때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어쩌면 모든 것이 부족해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시절이 더욱 행복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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