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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8. 2019

나에게 엄마는....

내 남자 이야기 (09)

(남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끔 이해가 안됐습니다. 시어머니는 왜 그렇게 장남을 편애하며 둘째인 남편을 홀대하셨을까? 그래서 남편이 많이 가여웠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 마음 어딘가에 상처가 남아 있을까 봐... 점점 더 많이 남편을 이해하면서 제게는 더 소중한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엄마...

나에게 엄마는 그저 무섭고 매정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엄마도 아니었던 기억들... 적어도 내가 철부지였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기억 단편에 남아있는 엄마는 언제나 빨래 방망이가 부러지도록 매를 댔다. 그리고 빨래판이 두 동강이 나도록 머리와 등을 내리쳤고 나의 빰과 팔, 다리 등 온몸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손매를 내리치셨다. 그것도 걸쭉한 욕설과 함께...


"이런, 때려 죽일 놈의 새끼!! 이런, 빌어먹을 놈의 새끼!! 육시럴 놈!!..."


난, 보통의 엄마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말썽을 많이 피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못된 놈으로 알았다. 그래서 늘 기가 죽어 있었다. 혹시라도 친구랑 싸웠다든가, 심하게 놀다가 옷이 더러워졌다든가, 형과 싸우면서 욕을 했다든가, 동생들을 돌봐주지 않았다든가... 이런 일이 엄마의 귀에 들어가면 나는 일단 맞는다. 엄마는 손에 잡히는 대로 매를 대셨다.


때로는 친구들과 놀다가 남의 집 장독대를 깼다거나 동네 아이를 때려서 상처를 내 변상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날에는 나는 일단 도망쳤다. 산으로, 이웃 동네로... 일단 튀고 본다. 그리고 밤이 되고 자정이 다 되서야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엄마는 대문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가 울음소리를 듣고 나오셔서 역시나 몽둥이를 들고 매질을 하셨다. 그리고 나를 씻기셨다. 밤이라 동네 시끄럽다고 그나마 덜 맞을 수 있었다. 사고 치고 도망한 나에게는 가성비 갑인 셈이었다.ㅋㅋ


(그렇다고 내가 주워다 기른 자식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형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와 모습이 너무도 똑같기 때문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징하게 매를 대셨을까....)

© KIMDAEJEUNG, 출처 Pixabay


엄마가 술을 드시는 날에는 아빠와 말다툼을 하셨다. 엄마의 입심에 아빠는 늘 말씀 없이 당하고 계셨다. 왜? 술을 아빠가 가르치셨단다. 그리고는 엄마의 등 뒤에서 궁시렁 대셨다.


"에이~! 시팔... 내가 미친놈이지, 뭐 하러 술은 맥여 가지고... 내 발 등을 찍는지..."


그 소리에 엄마는 연신 하소연을 뱉어내셨다.


"내가~ 꽃다운 나이에 김 씨 집안에 들어와서 허구헌 날 시집살이에 허리 한 번 못 펴고 고생만 하다가 골병들대로 들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어렸던 나는 엄마의 하소연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저 힘드셔서 우리들에게 화풀이하시는 줄 알았다.


© GoranH, 출처 Pixabay


세월이 러 나도 어느 정도 철이 들 때쯤, 엄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으셨다. 그리고 병원에서 엄마를 간호하며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지난 일이 생각나 물었다.


"엄마, 나 어릴 때 왜 그렇게 모질게 때리셨어요...?"


"난, 기억이 없다..."


헉!! 기억이 없으시다고?? 정말일까?? 갑자기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어처구니가 없네~"

© eduardmilitaru, 출처 Unsplash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때는 내 나이 28살 즈음. 그날도 연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동트기 전에 집으로 들어갔다. 당시에 탈탈 털어 처음으로 시작한 식품사업이 부도가 나서 회사 매각 절차로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고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부채를 갚기 위해 거래처에서 미수금 회수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버거웠다.


그런데 불이 다 꺼져 있어야 할 동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이웃분들이 밖에서 서성거리며 서 있었다.


"둘째야~ 뭐 하다 이제 들어오냐... 니 엄마 병원에 실려가셨구먼..."


나는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곧 준비한다고 하면서 잠시 잠을 잤던 것 같다. 새벽 6시, 동생이 흔들어 깨웠다.


"오빠!! 엄마가 극적으로 깨어났대. 병원 가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대... 수술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지..."


술이 덜 깬 상태로 나는 서대문 적십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당시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50대 초반이었지만 엄마는 그새 폭삭 늙은 할머니처럼 변해 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콧물까지 흘리며 엉엉 울고 계시는 아빠를 대신해 나는 직접 수술 동의서를 쓰고 엄마를 수술실로 밀어 넣었다. 수술이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웃음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수술실 이 닫히고 덩그러니 복도에 혼자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울었다. 힘없이 수술실로 향하는 엄마가 왜 그리 가엽고 불쌍해 보이던지...

(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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