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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Dec 10. 2019

코골이는 괴로워....

내 남자 이야기(42)

독신을 준비하며 혼자 살아온 세월이 10년이 넘어가고 있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생활이 시작됐다. 그때 아내는 33세, 나는 38세. 결코 빠르지 않은 나이에 시작된 결혼생활은 나에게는 중요한 삶의 전환점이었다.


"우리 싸우지 맙시다. 늦게 만나서 시작하는 거니까 다투는 시간도 아까울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손을 놓지 맙시다. 내가 걸을 때 어깨를 감싸며 걷는 것, 잠잘 때 팔베개하는 것은 정말 죽어도 못하지만 손은 항상 내어 줄 수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퇴짜 맞을 소리만 골라했지만 다행히 아내는 손 만지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릇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프러포즈를 먼저 한 당사자로서는 크게 문제 삼을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길을 걸을 때 어깨 위로 팔을 올려 걷기도 했지만 이내 팔을 내렸다. 아내의 키가 조금 큰 편이라 1분 정도 지나면 팔이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 그리고 한 동안 팔베개를 해 주기도 했다. 혹시라도 잠든 아내가 깰까 봐 저린 팔을 억지로 참다가 괜히 코끝에 열심히 침을 묻히기도 했다. 정말 팔베개도 힘든 일이다.  


한 번은 팔이 안되면 손이라도 베고 자겠다는 말에 손은 괜찮겠지 했지만.... 곤히 잠든 아내는 이내 손바닥 위로 고요히 침샘을 흘려 옹달샘을 만들기도 했다.



결혼 초. 잦은 출장과 업무 때문에 술자리가 많아 만취 상태에서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누군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이 행복했다.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기다려야 한다는 나의 고집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퇴근하며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아내가 속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은근히 보수적인 데다 가부장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만취 상태로 돌아온 나는 잠든 아내 옆에서 머리를 쑤셔 박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깊이 잠든 나의 눈에  번쩍! 하며 번개 치는 것 같은 것이 보여 눈을 뜨고 일어났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나는 꿈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정말 꿈이라면 다시 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 같다고 여기면서도 얼굴 부위가 따끔거리고 코가 얼얼한 것이 살짝 아파왔다. 분명 술 취해서 들어오는 길에 현관문이나 방 문에 부딪혔을 것이다.


"아~ 술 좀 덜 먹어야지... 잘 생긴 얼굴 작살나고... 잠도 못 자겠네..."


아침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간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유...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잠만 잤네요... 미안해요~"


그리고 나는 그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내와 같이 저녁 외식을 했다. 생맥주 한 잔 정도로 가볍게 하고 영화를 보면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들어와 일찍 잠을 청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이런 시간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리고 그날 새벽... 곤히 잠들어 있던 내 머리가 순간적으로 공중으로 밀쳐지며 덩달아 몸이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바람에 침대 모서리에 머리가 쿵~! 부딪혔다. 별이 보이고 귓전에 윙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없었다. 난데없는 폭격을 당한 느낌...


"이게... 뭔 일이지? 내가 기가 허해졌나...? "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아내가 아무 일 없었냐는 듯 잠결에 말을 건넸다.


"왜 그래요..? 잠자다 말고 갑자기 뭘 그리 궁시렁 거려요..? 뭐 잘못됐어요?"

"아니.. 그냥... 또 이상한 꿈을 꿨나 봐... 자자... 나... 몸이 허해졌나 봐. 보약이라도 먹을까 봐. 갑자기 머리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꿈을 꿨어..."



나는 그날 이후 나 때문에 아내가 잠을 설치는 것이 미안해서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 뒤로는 머리가 공중 부양되거나 얼굴이 부딪히는 것 같은 꿈은 꾸지 않았다. 그냥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일시적인 현상에 너무 예민한 것 같아 다시 마음이 편안해 지자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부부는 떨어져 자면 좋지 않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도 있고 해서.


그런데 그날 새벽. 다시 악몽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쿵! 소리와 함께 침대 밑으로 떨어져 머리를 방바닥에 심하게 찧었다. 그리고 옆구리가 쑤시며 통증으로 억! 소리가 났다. 방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뒷머리가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끔거렸다. 그리고 제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상하다.. 도대체 왜 침대에서만 자면 이렇게 고통이 오지?

왜 아내랑 자면 꼭 이런 일이 생기냐?




나는 아침 식사 때 간 밤에 잠자리에서 생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당분간 따로 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무표정한 듯. 지나치며 얼굴을 돌리는 아내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눈가와 입꼬리를...


그러나. 나는 심각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자기야. 앞으로 우리 무슨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대화를 통해 서로의 불만을 풀어야 할 것 같아... 나는 당신과 다투는 게 정말 싫거든... 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 내가 진짜 억지 쓰는 게 아니라 분명 아침에 나는 심각한데 자기는 웃는 것을 봤어... 요즘 내가 침대에서 겪는 일이 우연이 아닌 것 같아. 혹시 나랑 같이 자는 게 싫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혼부부가 같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싫다니.... 벌써 갱년기도 아니고 몇 개월 만에 헤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정말 심각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야 모든 정황이 보였다. 첫 번째는 손으로 얼굴 중앙을 싸대기 때리듯 밀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서 집어던지듯 밀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서 침대 밑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렇게 정황을 설명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

.

.

.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요... 사실 제가 어떻게 했는지 잠결이라 기억이 안 나는데... 갑자기 자기가 놀라서 깨는 걸 보고 저도 놀랐어요. 미안해요. 진짜 코 고는 소리가 탱크보다 더 큰데... 거기다 주무실 때는 꼭 제 귀에다 머리를 대고 주무셔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저도 자다가 경기할 것 같아 죽을 것 같았거든요... "


이런!!! 된장 할!!!

아내의 생존 본능이 나를 침대 밑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는 살기 위해 각자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지금 아내는 2층에서 나는 1층 거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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