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Dec 09. 2019

중환자실, 보호자들의 사연

내 남자 이야기(41)

https://brunch.co.kr/@goldstar10041/62

아버지의 머리 양편 관자놀이에 구멍을 뚫고 연결된 호스를 통해 링거병에 흘러내린 핏물은 각각 한 병씩 가득 찰 정도로 채워졌다. 다행히 피가 멈춰 곧바로 6층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은 하루 두 번의 면회가 이루어진다. 새벽 6시, 저녁 6시에 각각 두 명씩만 면회가 된다. 그때 상시 대기 보호자 한 명은 식사를 챙기고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배변 패드 등 기본적인 환자관리를 맡아야 한다. 상시 보호자는 가족 중 한 명이 전담하거나 간병사를 따로 두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면회자는 상시 보호자 외에 가족이 번갈아 가면서 면회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몇 년 전,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으시고 서너 달 동안 간병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사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저 긴 한숨만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아... 이번에는 몇 개월이 걸릴까...? 전과 다른 거라고는 사람밖에 없구나..."


지난번과 달리 다행히도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 침대와 나란히 있는 놓인 다른 침대에는 21세 여대생, 31세밖에 안 되는 새신랑 그리고 아버지와 동갑인 64세 아저씨. 이들의 침대 머리맡 벽에는 NS(신경외과)라는 표시가 붙여져 이곳이 어떤 환자들이 누워있는 곳인지 알 수 있도록 표시가 되어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코마 상태(혼수상태)로 의식이 없었고 아버지와 동갑내기 아저씨는 의식은 있지만 신체 움직임은 없는 상태였다.



첫날 오후, 면회를 마치고 나는 보호자 상시 대기실로 향했다.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동생에게 부탁하고 긴 마루 침상 중 비어있는 끝자리에 걸터앉아 다른 보호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동안 함께 하게 될 김**보호자입니다. 환자분이 빨리 회복해서 집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삼촌은 성격이 좋은가? 워째 여그가 참 자연스럽게 보이네... 잉.. 난 거시기.. 삼촌 아버지 옆에 누워있는 아자씨 마누래여... 나이를 보니께 동갑이더구만..."
"우리 부부는 고 째끄만 여대생. 어제 입원했어요..**병원 갔다가 안 받아줘서 119에서 추천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환자 보면 속 터지는데 그래도 동병상련이라고 보호자들과 함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네요. 저는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 보호자예요. 시어머니신데 화장실 가시다가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깨져 수술했어요. 그런데 워낙 나이가 많아서 기력을 못 찾으신다고 하네요. 에휴.~"


나의 인사말로 갑자기 시작된 이야기들. 묻지도 않았는데 서로 봇물 터지듯 환자가 입원하게 된 경위를 한탄하듯 쏟아냈다.


"우리 딸은 미대생이에요. 작품 출품 때문에 영감이 안 떠오른다고 고민하면서 매일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책상에 엎어져서 못 일어나더니.... 지금까지 누워만 있네요.. 이제 기관지 문제로 목에 줄을 끼운다고 뚫는 수술을 한다는데... 아빠는 딸아이가 깨어나면 놀랠까 봐 못 뚫게 하네요. 외동딸인데... 어쩔는지... 제발 깨어나야 하는데..."

"우리 아들은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되았는데... 공부를 원판 잘했어요.  핵교도 서울대 댕겼고. 행정고신가 뭔가도 척척 붙어갔고 최연소로 높은 공무원이 됐구먼요. 그런데 워낙 겁나게 바빠서 장개도 못 가고 해서 억지로 선봐서 결혼도 시켰는디...며느리한테는 아직 정도 못붙였는디 미안해서 죽겠당께요. 저렇게 보름째 잠만 자니.. 우짜쓰까잉~"


"난 여기 벌써 3개월째요. 그러고 보니 최고 고참이구만. 우리 마누라가 아침밥 차려주고 출근 전에 와이셔츠 다려준다고 밥상 앞에서 내 얼굴 보면서 살짝 웃더라고... 그게 마지막이야. 그냥 잠자듯 픽 쓰러졌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요. 사실 우리 회사가 IMF로 부도가 나서 전 직원들이 강제로 퇴직당했거든요. 가족들 모르게 한다고 속이면서 1년 넘도록 아침마다 출근복장으로 나갔다가 퇴근하듯 들어왔는데... 혹시 알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걸 모른 척하고 남편 힘들까 봐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속이 말이 아니었겠죠.... 내가 죽일 놈이라... 이렇게 간병하고 있어요..."


"우리 영감은 그 집 아부지랑 동갑인디. 벌써 1년이 다 돼가네. 술 쳐묵고 얼음판에 미끄러졌는디 뇌진탕에 출혈이 있었댜. 그래서 수술해도 못 일어나고 한쪽 팔만 겨우 움직여. 그런데 계속 침대를 때렸싸서 딸내미가 팔을 묶어부렀어. 우리 딸이 여그 병원 간호사여. 즈그 애비 간병한다고 일부러 그 힘들다는 중환자실로 보내달라고 혀서 고생하고 있지. 우리는 아무도 면회를 안 와. 나두 시방 보름 만에 올라왔당게. 영감탱이~ 빨리 죽어야 할 거인디... 죽지도 않고 자슥들 보기 미안해서 죽겄당게..."

그렇게 다들 사연들이 깊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저는 몇 년 전에 엄마가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이 병원에서 서너 달 중환자실에 계시다 퇴원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입원하셔서 오늘 또 여기 오게 됐네요.. 그래도 서너 달 지낸 곳이라 그런지 낯설지는 않아요. 다들 힘내시고요. 제 경험상으로는 환자 면회시간에 우는 것은 그리 좋지 않더라고요. 그냥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간혹 환자들이 깨어나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좋은 말을 해 주면서 환자들이 좋은 기억을 통해 생명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 그랬고 맞는 말이었다. 보호자들의 저마다의 푸념 섞인 사연을 듣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먼저 경험한 나의 생각을 위로와 함께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들과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약 2개월 동안 함께 병상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의 죽음을 보았고 유가족들과 함께 울었다. 그 가운데는 직접 내 손으로 마지막 뒤처리를 하고 장례식장으로 배웅을 하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뇌출혈, 전조증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