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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Dec 12. 2019

중환자실에서 바라보는 죽음

내 남자 이야기(43)

https://brunch.co.kr/@goldstar10041/64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지 일주일째. 하루 두 번, 아침저녁으로 30분간 주어지는 짧은 면회시간은 무척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환자의 상태에만 신경을 쓰며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따뜻한 수건을 준비해 환자의 얼굴부터 온 몸을 깨끗이 닦아낸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독 수건으로 입안을 양치하듯 닦아주고 코에 연결된 호스로 묽은 죽을 흘려 넣어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짧은 시간이지만 누운 자세를 바꾸어가며 등과 허리를 포함해 이곳저곳을 손으로 눌러 마사지를 해주어야 한다. 한 자세로 계속 누워만 있으면 욕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당 주치의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듣는다.


"뇌의 출혈은 잡혔지만 출혈부위가 워낙 광범위해서 수술은 아예 시도조차 어렵습니다. 현재는 의식이 있어서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언어를 포함한 모든 신체 기능이 정지상태라...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오른손을 움직이는 정도만 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 6개월 이상 장기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위험한 고비만 넘기면 준중환자실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돌아가실 날만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 결론은 그렇다고 봐야죠..."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옆에서 바라보는 가족들의 한숨... 그 한숨만큼이나 가파르게 늘어가는 병원비를 보며 가족들의 근심도 깊어져 갔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인가...'


함께 보호자실에 기거하는 다른 환자 가족들도 근심이 쌓여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2개월 뒤 준중환자실인 6인실로 이동했다. 그 사이 중환자실에 있었던 십여 명의 환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21세 여대생은 결국 목을 뚫고 호흡기를 달았다.


"안돼! 못 뚫어... 우리 딸은 꼭 깨어날 텐데... 그때 자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슬프겠냐구... 목은 성형도 못하는 곳인데..."


며칠 동안을 부부싸움을 하더니 결국 대성통곡을 하며 시술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런 금지옥엽을 병원에서 먼 길을 보낼 수 없다며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데리고 떠났다.


"실장님... 그동안 도와줘서 고마웠어.. 함께 있으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고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우리 부부가 사는 날까지 늘 기억할게..."


환자들이 수시로 들고나는 중환자실. 그곳에서 경험도 없고 경황도 없는 보호자들에게 위로도 하고 필요한 정보도 알려주다 보니 나를 보호실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새신랑은 입원하고 15일간을 혼수상태로 누워있다가 눈 한 번 못 뜨고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면회시간 30분 동안 환자의 귀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보호자실에서 환자에게 좋은 말만 하라고 부탁했던 나의 말은 그녀의 안중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아내의 울음소리만 들었던 새신랑은 마지막 눈물을 한 방울 흘리고는 숨을 거두었다.


뒤늦게 병원에 도착한 늙은 노모의 긴 한숨. 그 애처로운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신랑이 숨을 거둔 후 시신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 그녀의 입가에 슬쩍 비치는 옅은 미소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일까... 소름 돋도록 차가운 그녀의 눈빛과 입가의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럼 그렇지... 불쌍한 사람이군... 중매라는 데 무슨 정이 있을라고..'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 후 일어나지 못했던 시어머니도 결국 한 달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라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큰아들이라는 사람은 노모를 놓아주기 싫었는지 넋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시신 항문이 열리며 태변이 쏟아져 나오자 손을 덜덜 떨며 병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버렸다. 그대로 둘 상황이 아니어서 마침 곁에 서 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빠르게 변을 치우고 환복을 시켜 망자의 마지막 길을 깨끗하게 준비해 주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가족들은 모두 보호자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난, 우리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항상 예의 바르고 단정하신 모습만 보다가 깊은숨을 쉬시더니 태변을 쏟아 내시는데... 평생 못 보던 모습이라 충격도 심했고 당황스러웠어요. 거기다 무섭기까지 하더군요.  그때 실장님이 맨손으로 치우면서 깨끗이 닦아주고 정리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났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기억할게요..."


그래...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누구라도 처음 겪는 일에는 어찌할 바를 모를 테니...



아버지와 동갑이셨던 환자는 인연이 닿았는지 아버지와 하루 사이로 준중환자실로 옮겼다. 그것도 바로 옆 침상에. 그런데 그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주먹이 멍들 정도로 침대 모서리를 내리지는 바람에 병실 보호자들의 눈초리를 한 몸에 받았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면서 아버지를 간병하기 어려웠던 딸은 결국 간병인을 두었는데 밤에는 팔을 침상에 묶어 두어 조용히 잘 수 있었다. 그 환자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곳에 계셨다. 아마 딸을 오래도록 보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면에는 이렇게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보았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보았다. 병상에 누워있는 이들에게 가족은 생명의 끈을 가느다랗게 이어가는 희망이다.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잡고 싶은 그리움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고 남은 이들에게는 아픔과 슬픔이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불어 오지만 그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여전히 그들의 삶이 존재한다.


그렇게 인생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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