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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06. 2021

구치소의 하룻밤 (02)

내 남자 이야기(54)

(남편의 이야기는 천일야화 같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생을 참 많은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런 삶 속에서 다양한 인생을 만나고 때로는 편견으로 얼룩져 있던 저의 눈을 씻기도 합니다. 구치소의 두 번째 이야기...)


구치소로 이감된 첫날,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다. 방문이 열리자 사막 한가운데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강타한 것처럼 방안 가득 고였던 땀 냄새와 쉰 냄새 그리고 일명 뺑끼통에서 올라오는 시궁창 냄새가 온몸을 감싸고돌아나갔다.  


그중 대장인 듯한 사내가 멀뚱 거리며 서 있는 나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마치 군대 선임이 신병에게 내무반의 규칙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신고식 같은 느낌이었다.

"어이. 막내. 넌 그래도 운 좋은 거야. 이 구치소 건물 새로 지은 거라서 완전 호텔급이거든. 밥도 엄청 잘 나와서 다들 살찌고 나가니까. 하루 30분 운동시간 이용 잘하라고.."

'다행이다. 하루에 한 번은 이 답답한 방을 벗어난다니.'


구치소 방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저렇게 더러울까?, 과연 거기서 용변을 해결할 수 있기나 해? 진짜 어떻게 생겼지?’ 속으로 궁금했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다행이다. 좌변식으로 된 변기 옆에는 수도꼭지, 고무 재질의 물통과 바가지가 놓여 있었다. 휴지걸이는 사치품이었기에 외부 공기를 통하도록 만들어 놓은 창문에 박힌 쇠창살 옆에 두루마리 휴지가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유치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스형 화장실(요즘 스크린 골프장 안에 설치된 흡연 박스와 비슷한 모양), 조금은 움직임이 불편한 비좁은 공간이지만 상상 속의 푸세식이 아닌 것만으로도 황송할 지경이었다.


구치소의 하루는 점호시간에 맞춰 시작하며 점호시간에 맞춰 하루를 마감한다. 그 안에서도 정해진 규칙대로 각자의 삶을 또 살아간다. 



새벽 6시 전 기상, 그리고 고참 순서대로 ‘그곳’에서 용변을 해결하고 간단한 세면과 양치를

한다. 한 방 인원이 많다 보니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아침 일과를 마쳐야 하기에 시간도 빠듯하다. 


방 배정을 받은 후 방장의 호구조사가 있었다. 

'무슨 면접도 아니고. 내참.'

서면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 내렸다. 이곳 운영을 위해 방장이 만든 규칙이었다. 


이름, 전화번호, 영치금 내역, 수감 전 직업, 수감 이유, 죄명, 재판 진행 과정 등을 적었는데 내심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혹여 개인정보를 이용해 사회에서 불이익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눈치껏 집 전화번호가 아닌 휴대폰 번호를 적어내자 방장뿐 아니라 모든 재소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에는 휴대폰은 흔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려했던 것처럼 퇴소 후 그들 중 한 명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도 받았다. 분명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다. 


구치소 안에서의 생활은 영치금으로 이루어진다. 휴지, 비누, 치약, 기타 공동 생필품과 먹거리를 구매할 때 공개된 영치금으로 하루에 한 번씩 공동구매를 위한 영치금 인출 사인을 받았다. 영치금이 많은 사람이 대장이다. 


방장이 관리하는 사물함에는 마치 시골 전방과도 같이 온갖 생필품과 먹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매 끼니마다 조미 김과 각종 밑반찬이 항상 준비되어 나왔다. 특히 훈제치킨 등 고급 페스트 푸드도 있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교도관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이 경제사범들로 채워진 우리 방은 수시로 교도관들이 찾아와서 간식거리나 반찬거리, 저녁에는 안주거리를 요구하며 당연한 듯 쇠창살로 손을 내밀고는 했다. 그때마다 방장은 맡겨놓은 물건이라도 되는 양 물품을 내어주었다. 


"어이. 막내야. 이상하게 볼 것 없어. 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야. 그래야 우리 방 목욕시간도 넉넉하게 주고 식사 때 밥도 넉넉히 주는 거야. 그리고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데 이래야 눈치껏 벽에 기대기도 할 수 있어. 다른 방과 다르게 우리 방이 좀 자유로운 이유가 다 이런 것으로 기름칠해서 그런 거야. 돈이 좀 들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어."


진짜 그랬다. 세끼 식사는 기본 삼찬에 사재 반찬까지 칠첩 구첩반상으로 차려졌다. 나를 제외한 방식구들은 정말 엄청 먹어댔다. 

'무슨 걸신이라도 들렸나??'

'밖에서 굶다가 온 사람들만 모였나?'


얼핏 한 사람의 밥상 넋두리가 들렸다. 

"아. 맛있어. 난 구치소 밥이 제일 맛있어. 어차피 집행유예 사건인데 사회 나가면 열나게 일만하구 살찔 일이 없는데... 구치소만 오면 살쪄서 나간다니까. 술 담배 없는 거 빼면 진짜 괜찮은 거 같아. 여기 반찬 누가 하는지 진짜 궁금해."

헐...



그렇게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다른 시간은 밥상 위로 한자 책을 꺼내 놓고 천자문을 쓰며 보냈다. 사담은 금지되고 눕거나 다리를 뻗거나 할 수 없었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서 각자 한자 공부를 해야 했다.


다만 변호사 없이 본인이 직접 변론을 해야 할 경우는 변론기일에 맞춰 자료나 변론 준비를 위해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 방에는 유일하게 방장이 해당되어 혼자서 산더미처럼 쌓인 재판자료와 변론 서류를 준비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재소자들은 대표를 한 명 정해 한문시험을 치르는데 하필 좀 젊고 똑똑해 보인다며 나를 선택해서 교도관에게 제출했다. 덕분에 난 방장과 함께 나름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조금은 특별대우를 받으며 한자 공부를 했고 틈틈이 방장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래 수감된 나이 든 재소자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재소자들에게 운동시간은 그야말로 꿀 같은 시간이다. 낮 시간 동안, 방마다 교도관의 호명에 30분씩의 운동시간이 주어졌다. 복도를 따라 벽을 타고 한 줄로 들고난다. 좌측은 운동을 마치고 입실하고 우측은 교대로 체육관에 입장했다. 체육관은 대략 30여 평 정도의 넓은 곳으로 재소자들이 교도관의 통제에 따라 벽을 따라 돌며 천천히 걸어 다니는 형태로 행해졌다. 다른 운동이나 잡담은 금지되었고 대체로 동일 사범들이 섞이지 않도록 흩어 놔서 그저 서로들 눈인사와 반가움에 멋쩍은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나름의 특별한 인사들이 있었으니. 늘 그렇듯이 누가 봐도 조직 쪽에 있는 분들이다. 교도관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딱 한 사람을 향해 달려와서 폴더로 허리를 굽혀 고함치듯 인사를 하고 간다. 그들이 누군지 알려주는 변함없는 인사법.


"형님..!!! 식사하셨습니까 형님..!!!"

"됐다..!!! 요즘 관에서 누가 밥 굶냐..!!"

"조용히 운동들 해라..!!!"


그냥 무시할 일이 아니었다. 인사받으신 바로 그 ‘형님’이 우리 방 방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던 그 나이 든 재소자였으니 말이다.

'이런 젠장. 혹시 말실수한 거 없나?'

'분명 마약범이라고 했는데... 뭐야 그럼 그쪽 조직?'


참 별일이다. 유치장에서도 마약범들과 섞여 지냈는데 이렇게 또 구치소에서도

함께 지내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인천 모처 구치소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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