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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11. 2021

인생 사각지대(01)

내남자 이야기 (55)

구치소에서 있었던 14일. 평범한 일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다양한 인생들을 만났다. 그들에 대한 짧은 단상을 적어보려 한다.


먼저 방장 아저씨.
요주의 경제사범으로 분명한 것은 초범 이란 것. 당시 중년이었던 그는 지금쯤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겠지. 그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 신용금고 대표로 있다가 IMF 사태가 나면서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다 외환관리법 위반과 공금횡령으로 구속됐다고 했다.


대출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던 금고는 기업들이 부도가 나면서 부채 회수가 어려워지게 되었고 고액을 투자하던 큰손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금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차선책으로 소액 투자자들을 고리 이자의 유혹으로 끌어들여 피라미드 금융 회사를 운영했다.


그렇게 모인 자금은 국내 상황이 나빠지면서 해외 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된 고리 이자를 지급하고 투자로 생긴 이익을 배당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가 생각한 해외 투자처로 꼽은 곳은 미국 뉴욕 부동산, 라스베가스 카지노, 실리콘벨리 벤처 기업 등이었다. 지금 들어도 알만한 곳.. 그는 넘지도 못할 산을 바라보며 꿈을 꾸었다.


(구치소에서 그의 앞에 산처럼 쌓여있던 재판 기록과 증거 자료, 변론 서류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그를 통해 들었던 투자금 모집 형태는 지금도 금융 다단계 형태로 변형되어 가끔 뉴스를 통해 듣게 된다. 나름대로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들에게 실제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 실제 그가 터트린 금액은 150억이었다. 30년 전의 일이니 상당히 큰 액수였음을 기억한다.


"***씨 당신 진짜 속내가 뭐야?"

"....(웃음)"


담당 검사가 물었을 때 그저 씨익 웃어주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고 하는 방장 아저씨.

검사도 궁금했을 테다. 큰 거액을 사기 친 사기꾼인데 아무리 뒤져도 자금 빼돌린 흔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월세 방 생활에 이혼경력, 차량 한 대 없는 무일푼인 그가 터뜨린 액수는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방장님.. 실체가 뭔가요..? 저도 좀 궁금해집니다.."


대부분 누구나 목표를 가지고 산다. 몇 달, 몇 년, 몇십 년 후의 내 모습에 대해.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런 꿈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형량이 확정되어 교도소로 넘어가면 그곳이 집보다 편해 보일 것만 같은 사람이다.


16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와 50킬로 정도의 작은 몸무게, 그는 왜소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나이를 알려주는 흰머리가 귀밑을 덮었다. 이혼 후 혼자 살면서 가족들과도 철저히 남남이 된 외로운 사람이었다.


"난 무죄야. 대한민국이 국민들 못 먹이고 못 입혀주니까 내가 하려고 한 것뿐이야. 이깟 쥐꼬리 만한 나라에서 뭘 할 수 있겠어. 젊을 때 무조건 떠야 돼. 외국으로 나가야지, 여기서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아!!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려고 큰일을 벌였겠어.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괜찮았는데... 해외 투자 건이 잘되고 있었는데.. 그걸 못 참고.. 난 어떻게든 나가서 꼭 할 일이 있어.. 얼마 안 남았어. 이제 담당 검사도 이해하더라고.."


'당최.. 뭔 소린지..??'
'가끔 혼자서 왜 저러는지..'

궁금증만 더해가던 어느 날. 뒤죽박죽 되어 있던 서류 더미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던 그가 나에게 조서 한 장을 내밀었다.

'이런.. 미친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입만 벌렸던 기억. 그의 꿈은 어디가 한계였을까....


'투자 설명회 목표 금액 
20,000,000,000,000,000원... 이게 얼마야!! 2경?'
'투자 최종 목표... 미국 부동산 1/4 구매'


꿈은 실현 가능한 목표를 두었을 때 아름답다. 한 단계씩 차곡차곡 밟아나가는 희열이 있다. 그게 꿈이다. 그러나 허황된 꿈은 그저 몽상일 뿐이다. 몽상과 꿈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가 도달할 곳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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