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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16. 2020

구치소의 하룻밤

내 남자 이야기 (53)

'덜커덩... 끼이익... 구구구궁...'

눈 앞에 어마한 크기의 철문이 열렸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꺼운 회색 철문.

'이래서 큰 집이라고 부르나 보다'

호송차는 느리게 움직이며 구치소 내부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길기도 길다. 또 왜 그리도 어두운 건지. 내가 본 구치소 첫인상은 그랬다.


도착한 사무동 건물 탈의실 앞에는 차분하고 순한 모습의 교도관이 빙긋 웃으며 큰소리로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여러분들은 지금 ㅇㅇ구치소에 도착했습니다.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모쪼록 아무런 사고 없이 타기관이나 가정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안전하게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각자 배정된 탈의실 앞으로 일열 종대로 섭니다. 군대들 갔다 왔기 때문에 다 알아 들었을 것으로 알고 두 번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니다. 여러분들은 한 번만 겪는 일이지만 본교도관은 최근 시국과 맞물려 하루에도 수백 명씩 인솔하기 때문에 목이 많이 아픕니다. 뒤에 호송차들이 많이 밀려 있으니까 동작은 간결하고 빠르게 하도록 합니다"


아무도 질문을 하거나 입을 열어 잡담하는 사람이 없이 조용했다. 연이어 교도관은 말을 이어갔다.

"먼저 각자 배정받은 번호를 기억하고 사물함에 현재 입고 있는 옷을 속옷까지 모두 벗어서 넣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앞을 보고 차렷 자세로 섭니다. 단, 특별히 주의할 점은 런닝과 팬티는 털지 않고 그대로 벗어서 사물함에 넣습니다. 분명하게 얘기하는데 팬. 티. 털. 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궁시렁거리며 탈의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군대 가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대중없는 남자들이 옷을 벗고 있다는 것. 분명히 팬티를 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습관적으로 팬티를 털어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퍽.. 퍽... 퍽...

뽀얀 먼지가 여기저기 날리는 것이 보일 지경이다. '왜 아저씨들은 팬티를 벗고 털어댈까?? ' 


그때 순진하게 생긴 교도관의 찢어질듯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누가 빤스 털라고 했습니까??"

"주의사항을 듣지 못했나? 털지 말라니까 왜 털고 지랄이야! 니들은 한 번 털고 말지만 난 하루 종일 여기서 더러운 먼지 다 마시고 있단 말이닷! 구치소 생활 꼬이고 싶어 환장했나!"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음에도 그의 말에는 거침없는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우리는 하나의 제도 앞에 우리는 모조리 사회에서 구속된 범법자 집단일 뿐이었다. 순하게만 보였던 교도관은 일그러진 표정을 보이며 한 순간 악마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이후 모든 입소 절차가 마칠 때까지 악마의 얼굴을 하고 고함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어휴... 왜.. 빤쓰는 털어가지고... '


난 그 날 이후 지금까지 하나의 철저한 에티켓을 지키고 살아오고 있다. 어느 곳에서든, 하물며 사우나에서도 '빤스'는 절대 털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빤스'를 터는 것을 보게 되면 수십 년 전 그날, 그 교도관의 악마 같은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도 함께. 그가 맡았던 직무가 하필 그랬으니까.




악마 교도관은 입소자들의 중요 부위 검사와 항문 검사를 실시했고 각자 배정된 보호실로 입소되었다. 항문 검사 과정에서도 별의별 웃픈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차마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어 생략하기로 한다.


그렇게 배정된 보호실은 경제사범이 워낙 차고 넘쳐 수감할 방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함께 있어서는 안 될 마약사범까지 배정받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겪게 되고 말았다. 평균 10명 내외로 수용되는 방에는 15명 가까운 인원이 배정받았는데 내가 배정받은 곳에는 경제사범 4명, 마약사범 5명, 교통사고 피의자 외에도 사기로 들어온 사람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다.


이럴 때 나는 이런 대사가 떠오른다. 송강호 주연 '우아한 세계'  중에서

"아름답다, 아름다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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