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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pr 21. 2020

진실과 거짓, 8일 만의 이감

내 남자 이야기(52)

법.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육신이 구속되고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였다. 그 덕분인지 고혈압 증세가 나타나면서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 구토 증세가 이어졌다. 내 나이 20대 후반.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이때 이후로 고혈압약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달고 산다.


경찰은 본사 대표이사와 경영 이사진들의 출두를 요구하며 압박을 가해왔다. 이에 대해 변호사는 경찰 측에서 갑자기 파이를 키우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 사장, 냄새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얘들이 갑자기 일을 키우는 느낌이야.. 아무래도 참고인 조사로는 덩어리가 작으니까 크게 부풀리는 수작 같은데.."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났다. 시간이 갈수록 경찰 조사는 점점 어이없게 흘러갔다. 경찰 조서를 꾸미는 데 경기 지역 지사 수준이었던 내용이 전국 본사 수준으로 확장되면서 점점 무리수를 띄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한 번씩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거의 죄인 다루듯 취조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처음 내용과는 전혀 다른 부실기업에 방만한 기업 운영, 무리한 영업 정책, 과대광고로 인한 소비자 현혹, 의료기기 관리 소홀 등의 듣도 보도 못한 내용으로 진을 빼며 법률 위반 혐의로 내몰고 있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허위 날조된 이야기들에 혈압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두통이 계속 이어졌다. 할 수 없어 병원 진단을 받겠다고 요구했지만 통할리 없었다

"이봐요! 당신이 살려면 경영진 모두 출두하라고 해! 왜 자꾸 시간을 끌어!"

"형사님~ 참 답답하시네요. 내보내 주시던가. 유치장에 있는 사람이 바깥 사정을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누구한테 출석하라고 협박이나 할 수 있어야 말이죠."

"당신 회사에 출두 요청했는데 경영진 전부 연락 두절상태에 잠적이야. 무슨 죄가 있어도 있으니까 다 잠수 탄거 아니야?"


잠적이라니, 연락두절 상태라니.... 전혀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슨 죄가 있다고 협박까지 당하며 이렇게 죄인처럼 형사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한 번, 두 번 다녀간 변호사는 그 뒤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참고인 조사에 함께 해야 할 변호사라는 인간은 어쩐지 TV에 나오는 대통령보다 더 보기 어려웠다.


이내 형사가 내놓은 증거라고는 소비자가 제품 부작용으로 병원 치료 몇 차례 받고 영업사원에게 병원비와 제품 반품에 과한 보상 요구가 전부였다. 이 또한 회사가 부도 처리되는 과정에서 경찰 조사 때문에 업무 마비로 생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대 날조로 무거운 죄짐을 지게 하려는 경찰이 이해되지 않았다. 민중의 지팡이라 자처하는 공무원의 실적 쌓기 욕심이 만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일의 전후 사정은 이러하다. 경찰의 파이 키우기를 눈치챈 변호사는 회사 경영진들을 잠수시키고 본인만 전면으로 나서 경찰과 검찰의 형량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스스로 올가미로 걸어 들어간 장본인 이 바로 '나'였다.

' 내 발등을 나 스스로 찍은 꼴이군...'

변호사라는 녀석은 나를 포함해 경영진 6명에 대한 수임료로 3천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경찰이 사건을 키운 것인지. 아니면 변호사가 밑그림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8일 만에 나는 구치소로 이감되고 말았다. 유치장에서 잠시 고생하면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던 변호사는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죄지은 것도 없이 죄인이 되어 포승줄과 수갑이 채워진 채 굴비 엮듯 끌려가며 닭장차(죄수 호송차)에 올랐다. 호송 버스 안에는 간간히 아는 얼굴도 보였다.

'저들이 진짜 죄인일까?.... 진짜 죄인들도 보이는군...'


절도, 폭력, 마약, 강간, 사기, 살인, 상해 등을 저지른 죄인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며 짐짝 던져지듯 아무렇게나 밀쳐지는 나의 모습이 군중 속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이는 듯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의 혐오하는 듯한 눈길, 마치 벌레를 본 것 마냥 슬쩍 피하며 내뱉는 언어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안 될 낯선 풍경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턱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물고 분통에 악이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초라한 내 모습을 생각하며 이런 것이 좌절일까... 올라오는 생각마저 저 배꼽 아래로 눌러 똥이라도 빠져버리게 던져버렸다. 이것은 내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만 순간적으로 올라올 뿐 원통하고 비참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나는 다짐하고 다짐했다.

'이런 더러운 나라... 떠난다. 단 돈 1원짜리 미련마저도 없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고 보호해줄 법조차도 없는 나라. 누굴 믿고 내 등을 맡길 수 있을까. 하이에나 새끼들처럼 쓰러진 이의 살점을 뜯어먹는 세상. 떠나자. 아무도 없는 다른 나라에서 잊고 살자...'



시내를 관통하며 구치소를 향하는 닭장차 안에서 철망 틈 사이로 내다보이는 세상을 보고 있었다. 눈 앞에서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새삼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차를 타도 내 맘대로, 길을 걸어도 내 맘대로,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잠잘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지금 내게는 멀리 있는 희망으로 변했다.


'데모하다 잡혀서 닭장차 타보고 두 번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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