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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Feb 16. 2020

마약사범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내 남자 이야기 (51)

그렇게 시작된 유치장에서의 동거는 사흘째로 접어들었다. 같이 있던 경제사범들이 검찰로 송치된 자리에는 새로운 마약사범들로 채워졌다.


살면서 억울하게 경제사범으로 몰려 유치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 가운데 마약범과 한 방에 수용될 가능성은? 나는 이 기막힌 상황이 확률적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싸매야 했다.


그들과 동거를 하는 동안 다양한 마약 세계의 금단현상을 접하게 됐다. 그것은 가히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직도  그들의 기괴한 행동들, 체취. 눈빛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몸속에 남아 있던 마약이 효력을 다하면서 에너지를 소진한 그들은 다음 에너지를 충족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괴롭힌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 잠만 자기도 했다. 이들은 취침시간 외에는 눕지 못하게 하고 앉아서 잠들지도 못하게 하는 의경과 하루 종일 신경전을 벌였다. 계속 헛것을 보고 중얼거리며 고성과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마약범들은 상습 투약자들인 경우 공통점이 있다. 몸에서 향긋하고 묘한 꽃향기가 났다. 그리고 피부는 하얗게 탈색된 창백한 피부색을 띤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몸에는 형형색색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지금처럼 타투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젊은 사람으로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모두 몸이 거대한 도화지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들은 마약사범들로 배정된 방에 들어오면 하나같이 한 올 한 올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던져 알몸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작은 키에 마른 체형의 젊은 청년은 상당히 앳되 보였다. 그 역시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던졌는데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문신이 없는 깨끗한 상태였다. 그는 아직 덜 깬 마약 때문에 히죽히죽 웃으며 흐느적거리며 화장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면을 향해 걸어오는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마약범을 보면서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옆사람에게 '문신하지 않은 마약범은 처음 봤어요...'라고 속삭였다. 그런데 옆 사람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내게 손짓을 보냈다.


그 순간 나는 벌어진 입 사이로 새어 나오는 탄성을 막으려 한 손으로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몸 전면이 아닌 목부터 허리를 지나 엉덩이. 종아리에 이르기까지 전신에 관세음보살상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흐느적거리며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목부분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상의 자비로운 미소가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왼쪽 어깨에서 팔꿈치 부분에 새겨진 손가락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고 엉덩이와 종아리까지 이어진 옷자락은 그가 걸을 때마다 살랑거리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건... 예술이다...'


타투가 유행하는 오늘날에도 이런 작품이 나오기는 어려울 만큼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후반이었던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착해 보였지만 이미 상당한 범죄 경력을 가진 마약 중간책 이상이었다.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서 할 일이 없었던 탓에 그들은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기운이 빠지기 전까지는 정말 말이 많았다. 그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험난한 세계를 마치 직접 경험이라도 한 것처럼 강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마약범은 검거되자마자 소변검사부터 시행한다. 마약성분이 검출이 안되면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이유는 소변은 마약 잔존율이 5일 정도밖에 안되지만 머리카락은 5mm 이상이면 1개월 동안 검출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성분 검출이 되면 무거운 징역형이 주어지게 되는데 대부분은 징역형을 피하기 위해 담당 전담팀과 협의를 한다고 했다. 투약자 5명을 불던가 전달책 1~2명을 불면 '딜'이 성사된다고...


그런데 마약 사범으로부터 듣게 된 정말 무서운 사실은 자신이 헐값에 투약하기 위해 상습 투약자들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술집에서 사귈 것처럼 접근해 술잔에 몰래 약을 타서 먹이고 자연스럽게 중독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아주 싼 값에 구매를 도와주며 친분을 쌓고 이후로는 한 번 구입할 때마다 수십만 원을 주고도 못 사게 만들어 개인과 주변을 파탄나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세계로 유입이 되어 투약뿐만 아니라 전달, 판매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어둠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유혹은 한 개인과 주변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지게 하는데 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몸서리쳐지도록 무서웠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명이 했던 충고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온다.

"사장님들... 요즘 IMF 때문에 골머리 썩는다고 술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술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언제 어느 때 빵에서 다시 만날지 몰라요..."

"우리 같은 사람들 멀리 있지 않아요.."

" 자식들 단도리 잘하시구요~ㅎㅎ"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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