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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28. 2020

유치장, 기막힌 동거

내 남자 이야기 (50)

1층 3번 방. 경제사범 2명, 교통사고범 1명, 마약사범 5명 그리고 기타 잡범.


첫날 저녁부터 이들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특히 마약사범 가운데는 투약 중 검거된 사람도 있어서 남아 있는 약기운 때문에 말썽이 많았다.


"이봐요. 왜 우리를 이런 곳에 가두는 거요."

경제범으로 나와 함께 들어온 60대 사장은 다 죽어가는 소리로 내게 힘없이 물었다.

"저도 모르죠. 여기 상황을 보니 한 가지는 알겠네요. 우리 아무래도 *된 것 같네요. 완전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 같아요."


바로 그때. 바로 옆 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철장을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성들이 있는 방인데.... 아마 그곳도 마약사범이 있는지 이곳과 별로 차이가 없이 소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이! **놈아! 우리 엄마 불러줘. 야! 의경 새꺄! 우리 엄마 불러봐! 그 년 빨리 불러. 신고를 해. 세상천지에 지 딸년을 신고하는 엄마가 어딨냐! 이런 빌어먹을 개 같은 세상. 그래 너 죽고 나도 죽자. 엄마 불러! 야!!"


"야... 저 년도 지네 엄마가 신고했나 보네. 나도 초범 때 우리 엄마가 짭새 불렀잖아. 킥킥킥."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영화나 책에서만 봤던 일들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니. 그런 와중에도 앳띈 얼굴을 하고 큰 안경을 쓴 범생 모습을 한 의경은 별로 개의치 않은 듯 버럭 소리만 지르며 돌아다녔다.

"조용히 해! 여기가 당신들 집인 줄 알아?"




잠시 후, 저녁 식사 배식이 시작되었다. 유치장에서의 첫 식사.

'세상에... 이걸 먹으라고 준 건가...'


지금까지 이런 꽁보리밥은 없었다. 이것은 꽁보리밥인가. 생보리쌀인가.


잘 씹히지도 않고 까끌까끌한, 설익은 듯한 생꽁보리밥은 반 주걱도 채 안 되는 양이었다. 거기에 단맛은 전혀 나지 않은 소금에 절인 단무지 다섯 조각이 전부였다.


하루나 이틀 먼저 들어와 있던 사범들은 사식으로 아주 비싸게 백반을 시켜 먹었는데 하얀 쌀밥에 여섯 가지 반찬과 찌개가 나왔다. 그러나 비싸다 안 먹을 수 있을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한 끼를 굻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매 끼니를 현금을 주고 식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갑에 현금이 없이 카드만 있었던 나로서는 다음 날 오후 회사 직원이 면회를 올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국가에서 배식하는 꽁보리밥으로 끼니를 채워야 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은 밥 알을 세듯이 겨우 한두 수저 먹는 것이 전부였다.


특이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밖에서는 잘 먹지 않는 백반을 한 번도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할 듯 남김없이 깨끗이 그릇을 비운다는 점이다.


"여러분들은 인생에서 엄청난 경험을 하시는 겁니다. 이곳에 오시면 모든 사람들이 음식의 소중함도 절실히 느끼시고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크게 깨닫고 떠나시게 됩니다. 모쪼록 법적인 절차를 잘 마무리하시고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국가에서 여러분들 건강을 위해 건강식으로 만들어 드리는 식사이니 만큼 버리면 안 되니까 안 드실 분들은 미리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식사 시간 전, 간수 의경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진짜 큰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이 들기라도 한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방이 막히고 철창 밖으로 감시자가 수시로 인원을 체크하며 눕지도 못하게 하고 떠들지도 못하게 했다. 심지어 졸기라도 하면 지적하고 방망이로 철장을 두드리며 괴롭혔다. 오로지 조사받는 순서와 면회시간만을 기다리는 단순한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약사범들의 고성과 욕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적응이 안되긴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면회를 오고 시식을 위한 현금도 넣어주었다. 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고소인과의 빠른 합의였다. 그리고 집에는 조금 긴 출장을 다녀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되도록 빨리 마무리 짓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혹시 몰라서 잘 아는 형님을 경영진 변호사로 선임하도록 연락처를 건넸다. 그는 당시 검찰 중역을 퇴역하고 변호사로 전업을 한 인물로 사건 100%의 승률을 인정받는 능력 있는 변호사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뒤로 빠진 경영진과 경영진과 타협한 변호사 사이의 유착관계는 결국 그 나물의 그 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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