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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26. 2020

법대로 하니 법대 보내주는 국가기관....

내 남자 이야기 (49)

과거, 우리는 IMF라는 말을 알기나 했을까마는 이제는 안다. 미처 몰랐던 어린 세대들조차도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고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금 모으기 운동까지 하며 온 국민들이 나라를 살리고자 한 마음이 되었던 시절. 무너지는 경제 앞에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힘없이 쓰러져가야 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 또한 한 사람이었다.


전쟁터로 비유하자면 국가부도 경제파탄이라는 전쟁터에서 전략, 전술 없는 지휘부의 전투 명령으로 적군,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 전방위 공중요격 전투비행단의 공격과 뿌연 연막탄을 투하한 후 포격을 시작한 지상 기갑 부대의 대규모 공격이 일시에 시작된 상황이었다. 그 아수라장의 전쟁터에서 중경상을 입은 아군의 소총수로 전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특히 군 총수권자가 바뀌는 급박한 상황이었던 터라, 상황 정리 후에도 지휘부에서는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 그저 까라면 까야지... 아니, 까여야겠지...

이 또한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성립하는구나...





당시 나는 무역을 통해 의료기 수입 판매를 하고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계약할 때 환율이 1달러에 780원~900원 사이였다. 나름 국내 판매망이 탄탄했기 때문에 전국 매출은 탄탄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대도시에 지사를 두고 대리점과 영업소를 두어 매장 판매 및 영업사원을 통한 방문 판매까지. 하루하루가 신바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갑자기 치솟는 달러 원화. 1,000원이 넘기 시작하더니 1,500원 2,000원 2,300원... 끝없이 올라갔다. 수입대행사에서는 어차피 더 오를 테니 미리 3,000원으로 정리하자며 협박성 메일까지 보내왔다. 그리고 제조사는 제품 출고를 중단했다.


경제 관련 정부 부처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안심을 시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믿을 놈들을 믿어야 했건만.... 결국 몇 개월 사이에 제품 판매가를 매입 가격이 추월해 회사의 모든 지표가 악성 마이너스로 돌아서 버렸다. 직원들의 급여지급 연기가 이어지고 급기야 중단되었다. 제품 공급이 어려워지니 전국 대리점 조직이 와해되며 영업사원들은 집단 퇴사를 했다. A/S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소비자 불만이 늘어나고 반품 사태가 줄을 이었다. 어음과 가계수표 미회수에 이어 빗발치는 형사고발은 수순으로 이어졌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밝은 세상으로 나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관'과의 인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당시 어려움은 누구나 겪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당한 일들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발 빠르게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외환위기를 탈피하고자 경영진 모두가 부족한 자금을 감당하기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러나 부족한 인력과 미비한 자료 조사 등 시간이 갈수록 미세한 틈이 거대한 구멍으로 벌어지면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갔다.


수입이 어려운 의료기 대신 유통하기 시작한 건강식품의 부작용으로 소비자 고발이 이어졌고 전문지식이 없는 영업사원의 대책 없는 답변으로 경영진의 형사고발로 돌아왔다. 금융위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살고자 잡았던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라니... 이것 또한 무경험에서 나온 아픔이었다.


아직 젊고 혼자였던 나는 영업관리 이사직을 병행하며 지방을 돌며 업무를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인천 지역 모 경찰서에 접수된 고발 건으로 본사 담당부서장 참고인 조사 협조 공문을 경영진이 받게 되었다. 당시 많은 기업 대표들이 참고인 조사라는 미명 하에 경찰서에 출석을 하게 되면 바로 구속 기소가 된다는 소문이 돌아 경영진은 경찰 조사라는 것 하나만으로 잠수를 타고 말았다.


지방 출장 다음날 아침, 아무도 없는 경영진을 대신해 나는 참고인 조사를 위해 인천 경찰서로 향했다. 운전기사는 걱정 어린 말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이사님. 오늘 출석 안 하시면 안 됩니까?"

"왜요? 잘못한 것도 업 우리 회사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외환 위기 때문에 이런 건데요... 가서 설명해야죠. 영업사원이 실수한 것도 이해시키고 피해자 분도 만나서 합의도 봐야 하니까 가 봐야죠."

"그런데 굳이 이사님이 갈 일이 아닌 듯해서요."

나는 속으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경찰 조사를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고발건은 당시 경쟁하던 업체의 고의 타깃 고발로 이미 다른 경영진들은 참고인 조사 후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내가 안쓰러워 운전기사가 살짝 힌트를 주었던 것인데 알아 채지 못하고 제 발로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길 자청한 것이다. (그날 이후 최기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경찰서는 조사받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대부분 중소기업 대표들이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부터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군데군데 삼삼오오 모여 사태를 논의하거나 진한 담배연기를 뿜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복도 나무 의자에는 빈자리가 생길 틈이 없이 누구나 엉덩이를 디밀며 앉아 있었다. 각자 자신들의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젠장! 바빠 죽겠는데 기분 나쁘게 무슨 참고인 조사야!"

"열심히 일만 했는데 느닷없이 웬 경찰서..."

"담당 은행 지점장하고 얘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부도처리 됐다니까... 이해가 안 되네."


내 머리도 복잡한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귓전을 울렸다. 내 이름이 불렸다.


"육하원칙에 의해 질문에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사받는 사람들의 소리는 이미 시장을 방불케 해 조사관의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폭력범, 마약범 취조를 하고 있고 대부분은 경제사범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며 조사관과 중소기업 대표들의 다툼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몇몇 노신사들은 만사가 귀찮은 듯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법대로 하쇼. 법대로 해. 내가 이렇게 추궁당할 죄를 지은 거요? 형사 양반, 말 좀 해 봐요!"

형사 반쯤 돼 보이는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보이는 조사관이 담배를 깊이 들이 삼키고 내뱉더니 책상을 내리 쳤다.

쾅! 쾅! 쾅!

"자!! 자!! 사장님들!! 거 조용!!"

소리를 한 번 높이며 거세게 내리 친 책상 소리에 시끄럽던 관내가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여러분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여러분 모두가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만 알아두시고 시간이 늦었지만 일단 오늘 댁으로 못 가신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알겠습니까???"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멀리 떨어져 앉아 있어서 그가 한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다.

"뭐라고 하는 겁니까?"

"우리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네요."
"피해자요?? 그렇죠... 그럼 그렇지. 나라가 망조 든걸 죄다 우리한테 덮어 씌우면 안 되죠..."


참, 우습다. 피의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못하다니....




잠시 후, 각자 담배를 피울만한 여유를 갖은 뒤 제자리로 돌아온 사람들은 조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십 명의 사회부와 경제부 기자들이 경찰서로 들이 닥치는 일이 벌어졌다. 방송용 카메라도 여러 대 보이고 마이크를 잡은 기자들이 이 사람 저 사람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었다.


"어떤 일로 여기에 오셨습니까? "

"본인이 외환위기 피해자라고 생각하십니까? "

"잘못하셨나요? 그렇다면 무슨 잘못을 하셨나요?"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까? "

"현재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개 좀 들어보세요"


가관도 아니었다. 늘 TV에서 보던 익숙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대는 카메라에 당황한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상의를 끌어올려 얼굴을 들키지 않도록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범죄 피의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욕설이 들렸다.

"에이 씨팔... 갑자기 이게 뭐야!!"

언제 들었는지 기자가 그곳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댔다."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감정이 격해지신 건가요?"

"아... 뭘요.. 할 말 없어요."

" 지금 심경을 말씀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

"지금까지 인천 **경찰서에서 K** 박**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귓가에 생생하다. 나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대며 툭툭 치던 기자의 목소리, 아무 말하지 않던 내게 왜 말이 없냐며 다그치듯 묻던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죄송하다는 말들. 무엇이 죄송한 것일까?


경제 최선선에 뛰어다니며 발바닥에 땀이 나게 열심히 일해 비싼 세금을 낸 죄 밖에 없다던 중소기업 사장들이었다. 그러데 어디선가 들리기 시작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다들 같은 말을 뱉어냈다. 나는 궁금했다. 장말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잘못한 것처럼 만든 것인지....





오후 6시경이 되자 조서를 정리하던 형사들은 관내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유치장으로 밀어 넣었다. 폭력범, 마약범, 경제범 등으로 분리되어 있던 둥그런 원통형으로 생긴 별도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야! 의경! 사람이 많으니까 방 구분 없이 아무 방이나 인원수 비슷하게 밀어 넣어!"
"여러분! 방에 들어가서 계시면 별도로 호명해서 조서를 정리할 테니까 여기 의경 통제 잘 따라 주세요! 연세 있는 분들은 아마 아들뻘 될 테니까 서로 기운 빼지 마시고 이곳 규칙대로 잘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의경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주어진 방에 꾸역꾸역 인원수대로 채워졌다.

"넥타이, 허리띠, 구두, 귀중품은 모두 벗어서 각자 앞에 주어진 통에 넣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건 지금 이 자리는 죄를 판가름하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니만큼 별도의 질문 없이 본 의경의 통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하라니까!!"

앳되게 생긴 20살의 청년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우리 매섭게 노려보았다.


각자 배정받은 방이라....

아! 하필... 내가 들어선 방은 마약사범 방이었다. 이런 젠장할...

나는 이곳에서 세상에서는 만나지 못할 별의별 놈들을 다 만나게 되었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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