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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Oct 15. 2024

우리 집 지하실에, 아내가 잡아 온 남자가 있다

오마이뉴스 게재, <더 시크릿>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02] <더 시크릿>


배경은 1950년대 미국 작은 마을, 어린 아들을 둔 젊은 부부에게 일어난 일이다. 남편 루이스(크리스 메시나 분)가 차린 병원도 이제 막 자리를 잡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아내 마야(누미 라파스 분)는 남편의 병원에서 일을 돕는다.


둘은 유럽에서 만났다. 루마니아 출신의 마야와 미군 군의관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남편의 만남이었다. 둘은 종전 후 미국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았고 더할 나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더 시크릿>의 오프닝도 그런 나날이었다. 날이 좋았고, 공원은 한가로웠다. 마을사람들은 마야를 알았고, 그녀의 성실하고 친절한 남편에게도 호감을 보냈다. 어쩌면 마야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모든 행복은 한순간에 깨어진다. 공원에서 들려온 한 가닥 휘파람소리가 마야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 더 시크릿 포스터 ⓒ TCO(주)더콘텐츠온

 

남편도 모르는 아내의 과거


마야에겐 남모를 고통이 있다. 남편도 알지 못하는 과거의 경험이다. 집시 일파였던 마야 가족은 루마니아에 의해 나치에게 넘겨졌다. 마야는 누구보다 아꼈던 동생 미리아와 함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마야와 미리아는 서로를 한 줄기 빛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러나 독일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수용소에도 혼란이 일었다. 급기야 간수와 포로 모두가 도망기에 이르렀다. 마야와 미리아는 여성 포로무리에 섞여 탈출했다. 목적지는 가족들이 있는 고향, 루마니아였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던 것 같다. 그날 밤이 오기까지는. 빈 헛간에서 잠을 청한 밤이었다. 밤은 어두웠고 모두 고단했기에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독일군이 덮쳤다.


마야는 그날 들려온 휘파람 소리를, 제 위에 올라탔던 독일군의 얼굴을, 그가 칼이라고 불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녀가 살기 위해 혼자 도망쳤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운 좋게 살아났던가.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맞은 건 마야뿐이었다. 미리아는 죽었다.

   

▲ 더 시크릿 스틸컷 ⓒ TCO(주)더콘텐츠온

 

마야의 삶을 깨뜨린 휘파람소리


대양을 가로질러 온 미국이었다. 십 몇 년이 흘러 그때의 기억은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쑥쑥 커나갔고 남편의 병원에도 제법 환자가 몰렸다. 지난 몇 년을 괴롭혔던 악몽도 잦아들어 이제는 잘 살 수 있겠거니,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그 휘파람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들과 공원에 나와 햇볕을 쬐던 마야는 홀린 듯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더 시크릿>은 오랫동안 숨겨온 고통을 마주하는 영화다. 마야는 제가 저를 강간하고 제 동생을 죽였다고 믿는 한 남자를 찾아 진실을 들으려 한다. 그는 자신이 칼(조엘 킨나만 분)이 아니라며 결백을 주장한다.


전쟁의 피해자는 헤아릴 수 없다. 참전해 목숨을 잃은 군인들과 아무 원한 없이 그들을 죽여야 했던 반대쪽 군인들, 그 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을 겪어야 했던 이들, 그 모든 이들의 가족들, 다시 전쟁 속에서 또 다른 아픔을 겪은 민간인까지 모두가 피해자다.

   

▲ 더 시크릿 스틸컷 ⓒ TCO(주)더콘텐츠온

 

전쟁이 남긴 상처, 씻기지 않은 고통


영화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어떠한지를 되짚는다. 남편의 병원을 찾은 상이군인과 십년도 더 된 전쟁의 기억으로 온 삶이 망가져 버리는 아내, 그 아내의 기억으로부터 다시 상처를 입는 남편과 그들에게 붙잡힌 칼의 이야기가 긴장감 있는 스릴러로 버무려졌다.


이스라엘 출신의 유발 애들러는 홀로코스트 참화를 드라마와 전쟁영화가 아닌 스릴러의 재료로 활용했다. 이미 드라마와 전쟁영화로 많이 다뤄져 새로운 표현방식이 필요하기도 했고, 전쟁이 불러온 트라우마가 스릴러로 구현되기에 적절한 소재였던 탓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마음속에 묻어두고서 모른 척 살았던 게 어디 마야뿐일까.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준 독일군은 또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한국에도 씻겨나가지 않은 많은 상처가, 사회적 트라우마를 낳은 역사적 사건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징용피해자와 성노예 문제, 독립 이후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의 참상은 어떠했나.

   

▲ 더 시크릿 스틸컷 ⓒ TCO(주)더콘텐츠온

 

우리에게도 씻어야 할 고통이 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거쳐 민주화 시기 가운데서도 자행됐던 간첩조작 사건과 학생운동 탄압도 꽃다운 생명들을 꺾고 부수고 괴롭혔다. 1980년 광주의 가해자는 여전히 비싸고 귀한 삶을 사는데, 그에게 짓밟힌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면 알알이 서글퍼진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아래 우리가 받았을 고통을 남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이었나, 코로나19 확산 가운데서 베트남인 몇이 입국해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선 일이 있다. 참전한 한국군에 가족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학살 현장에 있던 이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도움을 받아 유엔(UN)에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무려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겨우 낸 목소리였다.


<더 시크릿>은 해결돼야 할 것은 해결돼야 한다고 말한다. 제법 흥미로운 스릴러의 방식으로, 홀로코스트와 전쟁이 여성에게 자행한 폭력을 이야기하는 흔치 않은 영화란 점에서 충분한 매력이 있다.


이스라엘 영화인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동안,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돌아본다. 내세울 영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하지도 않았다고, 아직 역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엔 우리 예술의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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