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2067> 영화평
SF(science fiction·공상과학)는 자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장르다. 우주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우주선을 비롯한 첨단기술의 결정체를 등장시켜야 하는 등 기술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단 우주가 아니더라도 시공간을 초월하거나 인간과 전혀 다른 생김새의 외계인이 등장하곤 하는데, 기술적 역량이 떨어진다면 비아냥을 피하기 어렵다. 애써 기술적 모자람을 채우더라도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SF장르에서 내적 완성도를 자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한 곳에서 나온 작품이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하는데 얼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오늘, SF는 할리우드에 독점되다시피 한 장르가 되었다. 아시아의 드라마나 아시아의 액션은 존재할 수 있어도 아시아의 SF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SF 영화가 한 편 나왔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로, 상당한 기술적 완성도에도 발상과 전개, 설정 모두에서 할리우드의 그림자가 역력했다. 완성도와 창의성에 인 비판을 피하진 못했으나 한국의 기술이 어디까지 도달해있는지를 짐작케 한 작품으로 의의가 컸다.
한때는 영화강국, 2021년 호주산 SF
이처럼 할리우드 밖에서도 주류 장르를 넘보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호주도 그중 하나다. 영어권 국가로 판권 판매에 유리한 이점을 지녔고, 독자적으로 상업영화를 제작해 수출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특히 판타지와 SF장르에 애정이 큰 호주에선 최근 몇 년 간 꾸준히 공상과학 영화가 제작돼 왔다. 개중 눈길을 끄는 건 스피어리그 형제의 2014년작 <타임 패러독스>다. 명배우 에단 호크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스피어리그 형제는 영어권 국가의 이점을 한껏 살려 저예산 고품격 SF가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 2067 >은 그런 풍토 아래 제작된 호주산 SF영화다. 역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코디 스밋 맥피를 얼굴로 내세웠고, 호주 출신 배우들이 뒤를 받쳤다.
줄거리는 이렇다.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가득한 2067년, 지구는 종말을 앞두고 있다. 자연은 파괴된 지 오래,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도시들은 하나 둘 화염에 휩싸인다. 숨 쉴 산소가 부족해 사람들은 호흡기를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한다. 그나마도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 지구의 종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SF
하나 남은 길은 시간여행이다. 407년 뒤인 2474년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다. 이든 와이트(코디 스밋 맥피 분)을 미래로 보내라는 것. 2067년에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이든은 타임머신 너머 미래로 향한다.
< 2067 >은 전형적 디스토피아 서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한 인간의 분투기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인간의 분투를 그리려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한 영화다.
영화에선 <터미네이터>나 <스타게이트> 같은 할리우드 SF명작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황폐한 지구에서 시공간을 오가며 희망을 찾는 이야기와 그렇게 도착한 다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렇다.
문제는 영화의 규모가 비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우거진 숲과 제한된 세트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조악한 세트의 끝이 고스란히 드러나리라는 두려움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호주영화의 역량은 어디로?
CG에 기대 전진했던 <승리호>의 선택도 < 2067 >에겐 사치에 가깝다. CG는 촌스럽기 짝이 없고 대부분은 무언가를 보고 놀라고 달리는 배우들의 연기에 기댄다. 호주의 넓은 풍광과 아름다운 도시를 놓아두고서 어째서 SF라는 장르에 매몰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2067 >은 2021년 할리우드와 호주 영화계의 실력이 얼마만큼 벌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교적 꾸준히 수준급 작품을 내놓았던 호주영화계는 여전히 옛 수준으로부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영화의 맹주로 불렸던 프랑스는 2000년대 초반 <크림슨 리버> <늑대의 후예들>과 같은 규모 있는 작품을 연이어 내놓았으나 할리우드와의 격차만을 확인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뤽 베송도, 성룡과 이연걸도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겼다. 호주영화계의 영웅이었던 조지 밀러는 할리우드에서 <매드 맥스>를 재탄생시켰다.
재능 있다는 이들은 모두 할리우드로 건너간 뒤 호주인들이 찍어낸 SF를 보며 지금은 그때 그 시절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본다. 어느덧 세계 속의 영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영화는, 그 수준은 과연 충분히 안전한 것일까.
SF(science fiction·공상과학)는 자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장르다. 우주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우주선을 비롯한 첨단기술의 결정체를 등장시켜야 하는 등 기술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단 우주가 아니더라도 시공간을 초월하거나 인간과 전혀 다른 생김새의 외계인이 등장하곤 하는데, 기술적 역량이 떨어진다면 비아냥을 피하기 어렵다. 애써 기술적 모자람을 채우더라도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SF장르에서 내적 완성도를 자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한 곳에서 나온 작품이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하는데 얼마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오늘, SF는 할리우드에 독점되다시피 한 장르가 되었다. 아시아의 드라마나 아시아의 액션은 존재할 수 있어도 아시아의 SF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SF 영화가 한 편 나왔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로, 상당한 기술적 완성도에도 발상과 전개, 설정 모두에서 할리우드의 그림자가 역력했다. 완성도와 창의성에 인 비판을 피하진 못했으나 한국의 기술이 어디까지 도달해있는지를 짐작케 한 작품으로 의의가 컸다.
한때는 영화강국, 2021년 호주산 SF
이처럼 할리우드 밖에서도 주류 장르를 넘보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호주도 그중 하나다. 영어권 국가로 판권 판매에 유리한 이점을 지녔고, 독자적으로 상업영화를 제작해 수출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특히 판타지와 SF장르에 애정이 큰 호주에선 최근 몇 년 간 꾸준히 공상과학 영화가 제작돼 왔다. 개중 눈길을 끄는 건 스피어리그 형제의 2014년작 <타임 패러독스>다. 명배우 에단 호크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스피어리그 형제는 영어권 국가의 이점을 한껏 살려 저예산 고품격 SF가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 2067 >은 그런 풍토 아래 제작된 호주산 SF영화다. 역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코디 스밋 맥피를 얼굴로 내세웠고, 호주 출신 배우들이 뒤를 받쳤다.
줄거리는 이렇다.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가득한 2067년, 지구는 종말을 앞두고 있다. 자연은 파괴된 지 오래,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도시들은 하나 둘 화염에 휩싸인다. 숨 쉴 산소가 부족해 사람들은 호흡기를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한다. 그나마도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 지구의 종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SF
하나 남은 길은 시간여행이다. 407년 뒤인 2474년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다. 이든 와이트(코디 스밋 맥피 분)을 미래로 보내라는 것. 2067년에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이든은 타임머신 너머 미래로 향한다.
< 2067 >은 전형적 디스토피아 서사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한 인간의 분투기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인간의 분투를 그리려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한 영화다.
영화에선 <터미네이터>나 <스타게이트> 같은 할리우드 SF명작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황폐한 지구에서 시공간을 오가며 희망을 찾는 이야기와 그렇게 도착한 다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렇다.
문제는 영화의 규모가 비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우거진 숲과 제한된 세트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조악한 세트의 끝이 고스란히 드러나리라는 두려움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호주영화의 역량은 어디로?
CG에 기대 전진했던 <승리호>의 선택도 < 2067 >에겐 사치에 가깝다. CG는 촌스럽기 짝이 없고 대부분은 무언가를 보고 놀라고 달리는 배우들의 연기에 기댄다. 호주의 넓은 풍광과 아름다운 도시를 놓아두고서 어째서 SF라는 장르에 매몰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2067 >은 2021년 할리우드와 호주 영화계의 실력이 얼마만큼 벌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교적 꾸준히 수준급 작품을 내놓았던 호주영화계는 여전히 옛 수준으로부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호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영화의 맹주로 불렸던 프랑스는 2000년대 초반 <크림슨 리버> <늑대의 후예들>과 같은 규모 있는 작품을 연이어 내놓았으나 할리우드와의 격차만을 확인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뤽 베송도, 성룡과 이연걸도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겼다. 호주영화계의 영웅이었던 조지 밀러는 할리우드에서 <매드 맥스>를 재탄생시켰다.
재능 있다는 이들은 모두 할리우드로 건너간 뒤 호주인들이 찍어낸 SF를 보며 지금은 그때 그 시절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본다. 어느덧 세계 속의 영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의 영화는, 그 수준은 과연 충분히 안전한 것일까.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