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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Nov 18. 2024

암살자 출신 총 든 목사, 사이비 교주를 겨누다

오마이뉴스,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26]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포스터라온아이

 

어쌔신 프리스트, 직역하면 암살자 신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은 속도감 있게 휘몰아치는 리듬감이 특색 있는 액션영화다. 마치 한 단계를 깨고 나면 다음 단계가 나오는 게임처럼 영화 내내 도전과 극복의 에피소드가 연달아 펼쳐진다.


영화는 <테이큰>과 <존 윅> <맨 온 파이어> 류의 액션물이다. 너무 흔해져 전형적으로 여겨지는 장르로, 애정하는 존재를 잃어버린 남성의 파괴적 복수극이다. 딸이거나 강아지거나 지키고자 하는 선한 존재를 상실한 남성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 막강한 상대의 본진으로 처들어간다. 그 앞에 펼쳐지는 건 지옥도뿐이다.


대개 주인공은 인간병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존재다. <테이큰>과 <맨 온 파이어>에선 전직 특수요원이고, <존 윅>에선 전직 킬러인데, 어느 편에 섰느냐만 다를 뿐 막강한 신체능력과 정신력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영화가 있었는데, 2010년작 <아저씨>다. <맨 온 파이어>가 2004년, <테이큰>이 2008년작이니 영화계의 유행이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스틸컷라온아이

 

너무 늦게 나온 상남자의 복수극


그런 의미에서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맨 온 파이어>로부터 무려 15년을 뒤졌는데, 15년은 최신 유행 마블영화 어벤져스 멤버들이 죄다 은퇴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다소 늦었던 <존 윅>은 적어도 딸 대신 강아지를 잃은 남성의 분노를 담아 컬트적 성향을 극대화했는데,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은 그런 차별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 안이하게까지 느껴진다.


각설하고 이야기는 이렇다. 주인공은 킬러다. 청부살인업자 네트워크 소속 킬러 벡맨(데이빗 A.R. 화이트)은 영화 시작과 함께 손을 씻는다. 친구조차 배신해야 하는 킬러의 세계에 어떤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뭉치를 싸들고 교회를 찾아 몸을 의탁하는데, 그곳의 목사 필립(제프 파헤이 분)은 벡맨에게 믿음과 애정을 보인다.


필립이 죽고 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이어받은 벡맨에게 어느 날 여자 하나가 찾아온다. 필립의 조카라는 타비사(브라이튼 샤비노 분)다. 벡맨은 타비사를 딸처럼 애지중지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악당들이 벡맨에게서 타비사를 앗아간다.


이후는 보나마나다. 벡맨은 십자가 대신 총을 들고 타비사를 데려간 일당을 쫓는다. 그들 하나하나를 추적해 꼬리부터 머리까지 순서대로 박살내는 게 영화의 줄거리 전부다. 벡맨의 고뇌와 고통, 간절함이 그의 복수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맨 온 파이어> <테이큰> <존 윅> <아저씨> 같은 영화가 늘 그러했듯, 설득력 있는 복수가 처절하고 잔혹할수록 관객은 응원하고 환호한다.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스틸컷라온아이

 

총든 목사가 주인공인 종교영화라고?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의 차별점은 종교성에 있다. 액션 그 자체가 주는 재미에 치중한 다른 영화들과 달리 영화의 결말부에 종교적 믿음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선택에 상당한 관심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가브리엘 세블로프의 색채가 한껏 묻어난 작품답게 영화의 주제의식은 철저히 개인을 넘어선 존재에 대한 것이다.


타비사를 납치한 조직의 수장이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점부터 그에 맞서는 개신교 목사의 복수극, 그리고 복수와 자비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국 개신교는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접점을 찾아 제 색깔을 새로운 세대 신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가브리엘 세블로프가 수장으로 있는 퓨어플렉스의 작품들을 비롯해 지난해 말 개봉한 <언플랜드> 같은 영화들이 꾸준히 전 세계 관객들에게 제 믿음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 <십계>나 <벤허> 등에서 보듯 노골적이었던 종교영화가 여러모로 섬세하고 교묘하게 진화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어느 다른 종교보다도 개신교가 영화산업에 적극 진출한다는 점은 여러모로 신선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수백 년 전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 글라스, 환상적인 성가대와 파이프오르간이 냈던 효과를, 오늘날엔 영화가 대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쌔신 프리스트 벡맨스틸컷라온아이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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