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희 사건
이씨가 겪은 일련의 사건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전형 가운데 하나다. 한 집도의가 동시에 여러 수술실을 열어 수술을 했고, 약속한 의사 대신 경험이 일천한 의사가 수술을 이어받았다. 사고가 나자 일부 의료진이 유가족에게 과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얘기했지만 얼마 뒤 바로 입장을 바꿨다. 병원은 피해자가 후송된 대학병원이 응급조치를 잘못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유족에게 “법대로 하라”고 말했다.
다른 의료사고와 다른 점이라면 수술실CCTV 원본을 그대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간 다른 의료사고 사건을 취재하면서는 원본을 확보한 피해자를 만날 수 없었다. 상당수 병원에 수술실CCTV가 없었고, 있어도 촬영되지 않았으며, 촬영됐다 해도 피해자 요청에 온갖 이유를 들어 제공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쳐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설 경우에야 CCTV가 확보되곤 했다. 시일이 상당히 지나게 마련이므로 그조차 삭제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권대희 사건은 그런 점에서 천운이 따랐다고 해도 좋겠다.
이씨가 병원을 고소한 이후 경찰 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수사는 늘어졌다. 무려 2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수사관도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사건만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의료사고가 전문적인 분야다보니 전문적인 기관에 부탁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보건복지부, 여러 감정기관에 감정을 요청했는데 답을 받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의료사고가 피해자에게 특히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 더욱이 성형 쪽엔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수사관들은 다른 사건들로 바빴고 감정은 요청한 것에 한해서만 답을 해줬으므로, 이씨가 직접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총 500번 이상 CCTV를 돌려봤다. 수술시간만 3시간이 넘고, 이후 과정까지 총 길이 7시간이 훌쩍 넘는 영상이었다. 그 화면 안에서 대희는 발가벗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CCTV와 의무기록지를 비교해가며 시간대별로 표를 만들어 분석했다. 언제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들어왔으며, 또 언제 나갔는지, 수술은 언제 시작됐고, 피가 담긴 병은 언제 비워졌는지 등등 모든 상황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병원이 주장한 것들 상당수가 거짓이란 걸 확인했다.
수술을 책임지는 집도의와 이어 받은 그림자의사, 환자 생명유지를 맡는 마취과의사가 수시로 수술실을 드나들었다. 그래서 대희가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파악할 수도 없었다.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긴 시간이 길었고, 의사가 단 한 명도 수술실에 없었던 시간도 33분이나 됐다.
간호조무사들은 수시로 수술실 바닥에 고인 핏물을 대걸레로 닦아냈다. 그 동안에도 피는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시간대별로 혈압과 맥박까지 기록해 비교하니 가관이었다. 대희가 위급한 상황에도 특별한 처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간호조무사 혼자 대희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휴대폰을 보기까지 했다.
의무기록지에 적힌 혈압과 맥박은 죄다 70, 80, 90 이런 식으로 10단위로 끊어 적어 실제인지 믿기도 어려웠다. 마취과의사가 주입했다던 혈액대체제 펜타스판은 주입횟수와 시간 모두 영상과 맞지 않았다. 의료사고 사건에서 의무기록지 조작으로 처벌받는 사례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희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수혈을 받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마취과의사는 “병원에 준비된 피가 없었다”고 “다른 수술도 그렇다”고 실토했다.
수소문해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자료를 가져가 보여주고 물었지만 제대로 답을 해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한 번에 수 십 만원씩 비싼 돈을 들여서 여러 기관에 감정을 보내고 나서야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가 병원의 처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겨선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수혈할 피도 미리 준비를 하고, 이상이 발생했으면 주저 없이 이송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경찰은 집도의와 마취과의사, 그림자의사, 간호조무사들까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8년 10월 5일이었다. 대희가 죽고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19년 여름, 이 모든 고난의 길을 겪어온 이나금씨는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병원 측에게) ‘법대로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이게 법이 잘못됐다는 뜻이죠. 법으로 가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전 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의료사고 피해자랑 병원 사이에 정보비대칭이 심하죠. 유치원생한테 박사논문 풀어서 소송하라는 꼴이에요. 그러면 재판부에서 판사가 어느 정도 약자의 입장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죠. 그러니 기고만장할 수밖에요.”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