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그 의사, 오늘도 진료하고 있다고?

권대희 사건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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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의사면허 문제다. 권대희 사건이 5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 의사면허 규제 문제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007년 경상남도 통영의 한 의사가 수면내시경 치료를 위해 마취된 여성환자들을 성폭행해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엔 서울의 한 의사가 여성을 성폭행했다. 2018년엔 대장내시경을 위해 마취된 여성환자의 항문을 진찰하는 척 하다가 손가락을 성기에 집어넣은 의사도 있었다. 이 의사는 손가락이 미끄러졌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했으나 유죄판결을 피하지 못했다. 이런 의사가 한둘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강간과 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가 848명이나 된다. 물론 더 심한 사례도 있다. 같은 기간 살인을 저지른 의사는 37명이나 된다.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다.


정말 놀라운 건 이들이 아무 문제없이 의사로 일할 수 있고, 실제로도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이들에게 진료받고 있을 환자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왜 그럴까. 2000년 개정된 의료법 때문이다. 의료법은 허위진단서 작성, 허위진료비 청구, 마약류 유통 등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형법상 살인이나 상해, 강간, 강제추행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엔 지장이 없는 이유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00년까진 의사가 범죄를 저지르면 면허에도 문제가 생겼다. 변호사나 회계사, 법무사 등 다른 전문직역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00년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던 한나라당 김찬우 의원 주도로 법이 개정됐고, 의사면허는 의료법 위반 외엔 건드릴 수 없는 철통면허가 됐다. 초유의 면허개악이 이뤄진 것이다.


이후 어떤 의사들은 괴물이 됐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했을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환자가 죽고 장애가 생겨도 문제될 것 없다는 투였다. 어떤 의사들은 환자를 사람이 아닌 것처럼 대하기도 했다. 황당한 의료사고가 쏟아졌다. 그 연장선에서 어느 아까운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다. 바로 마왕 신해철이다.


고 신해철씨는 권대희 사건이 발생하기 2년 전인 2014년 10월 사망했다. 당시 신씨는 서울 송파구 스카이병원에서 장협착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집도의인 원장 강세훈씨는 신씨의 동의 없이 위축소수술을 함께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소장 하방과 심낭에 천공이 발생해 복막염과 패혈증이 생겼다.


신씨는 수술 이후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병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퇴원한 신씨가 직접 병원을 다시 찾았음에도 다시 돌려보냈다.


사건이 화제가 된 이후 강씨에게 수술을 받고 사망한 환자가 4명 더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사건 이후에도 강씨의 의사면허는 유지됐다. 그는 2017년과 2018년 전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외과과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2018년 2심에서야 업무상과실치사와 의료법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법정에서 구속됐다. 강씨는 구속 중 또 다른 의료사고로 금고형이 추가되기도 했다.


강씨 재판과정에서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하현국 부장판사는 집도의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어쨌거나 면허가 취소된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에서 신씨 측을 대리해 집도의의 구속을 이끌어낸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의료법 개악으로 의사들의 윤리적 수준이 무너지고 일부 미꾸라지가 전체 의료계를 혼탁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의료법을 종전과 같이 개정해 일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를 한 의료인의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의사면허 규제 강화 법안은 제21대 국회 들어 강병원, 권칠승,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지만 2020년 30여분의 짧은 논의 한 차례만 이뤄지고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회의에서 법안을 다룬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 의원 중 통과돼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건 강병원, 김성주,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뿐이었다. 의사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기윤, 김미애, 서정숙,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은 반대 또는 아예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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