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자, 빛을 옮긴 날이 있었단 걸
권대희 사건
2019년 봄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뒤 내보낸 인터뷰 기사 말미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매직스피커는 모든 촛불을 응원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그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촛불이 태운 빛을 세상에 전하는 거울이고자 합니다. 작고 소중한 빛을 그를 필요로하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빛을 지켜내는 파수꾼의 마음을 퍼뜨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촛불들이 거센 바람 앞에 위태로운 밤을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이 홀로 타버리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거울이 될 겁니다. 스피커가 될 겁니다. 부디 우리의 시도가 마법처럼 빛나기를!]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유령수술로 숨진 고 권대희씨 사건에서 결정적인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던 수사검사는 결국 검사직을 그만두었다. 병원 측 변호사와의 특별한 관계는 끝내 문제되지 않았고 검찰에 부당함을 따진 항고와 재항고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0.32%의 좁은 문을 뚫고서 재정신청이 인용된 뒤였다.
검찰은 재정신청 인용의 결과로 당초 배제했던 의료법 위반 혐의점을 추가하여 권씨 수술 병원 의료진들을 기소하였다. 유족을 두 번 울린 검찰에 대하여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수 년을 싸워낸 결과였다.
형사 2심에서 원장은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마취과 의사와 유령의사 역시 유죄판결을 받았다. 공장식 유령수술이 명백히 위법하며 고용된 의사일지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상징적 판결이었다. 피고인들이 불복하여 상고함으로써 사건은 대법원 결정을 앞둔 상태다.
환자가 사망했음에도 '14년 무사고' 광고를 내걸었던 병원은 끝내 폐업했다. 수술실CCTV를 확보해 병원과 싸울 용기를 냈던 그녀는 모든 병원 수술실에 CCTV가 달려야 한다며 법개정 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국회의 외면에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피켓을 들고 서는 노력이 뒤를 이었다. 수억원의 합의금보다는 수술대 위에서 죽음에 가까워질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탓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이루어졌다. 비록 법안을 무력화하려는 자들의 치졸한 작업이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곤 해도 말이다.
의료계와 법조계의 부조리함이며 오만함과 맞닥뜨려서 이 어머니는 끝내 무릎 꿇지 않았다. 그녀의 노력 끝에 결코 작다 할 수 없는 선명한 변화들이 이루어졌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여전히 의료계와 법조계에선 용납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의료범죄가 의심되는 수많은 사건이 터져나오고 아까운 생명들이 흔들리다 꺼져버린다. 유족과 합의를 본 병원들은 버젓이 무사고라 광고를 지속하고 우리의 법은 누군가의 신고에도 벌금 100만원이며 영업정지 얼마 즈음에 멈춰서 있다. 약삭빠른 변호사들은 오늘은 병원의 편에, 내일은 환자의 편에 서며 주머니를 부풀리는 데만 여념이 없다. 보잘 것 없는 유족 대신 떵떵거리는 피고인에게 기운 검사가 세상에 또 없으리란 법이 없다. 선명한 기득권과 그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가운데서 이를 근본부터 바로잡자 나서는 이를 나는 얼마 만나본 일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전보다는 조금쯤 나아졌음을 느끼고는 한다. 그중 작지 않은 부분이 내 앞에 앉은 이 작은 여성의 공이었음을 안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3년도 더 지난 오늘에 이르러, 나는 그날의 거울이 깨어져 못쓰게 되었음을 부끄러워 한다. 다만 그 시절 꺼질까 염려한 작은 촛불이 어느덧 활활 타올라 이제는 횃불이 되었나 돌아보는 날도 없지 않으니, 나는 내가 그 빛을 더 멀리 옮긴 날이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2022. 12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