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 기각

8년의 싸움 끝에

by 김성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판사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들었던 감정이 있다. 처음엔 안도였고 다음엔 환희였고 그 다음은 막막함이었다. 마땅히 될 것임을 알면서도 혹여 파기가 되면 어쩌나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나 될 것은 되는 것이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권대희 사건, 무려 8년의 싸움이었다. 유족이 수술실CCTV 확보부터 의무기록지 대조분석, 온갖 자료 확보까지 고생고생 하여 얻은 결과다. 집도의는 수술 중에 나가버리고 자격 없는 이가 의료행위를 하며, 동시에 여러 건의 수술을 진행하는 행태가 오로지 여기 한 곳만은 아니란 것이 이제 더는 충격적이지도 않게 느껴진다. 매년 비슷한 사건이 속출하는 가운데 오늘의 한국은 정확히 실태를 파악하지도 이를 바로잡지도 못하고 있다. 곳곳에서 패배하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 가운데서 마침내 승리한 이 사건이 이정표가 되기를.


지난한 여정이었다. 병원의 의무기록은 허술하거나 뒤바뀌어 있었다. 부족한 의료지식을 구걸하듯 얻었고, 수술실CCTV를 수백차례나 돌려보며 한 발씩 진실에 다가섰다. 유령수술부터 이어진 비도덕적 행태는 오로지 피해자 권대희에게만 있던 것이 아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의식을 잃은 채 이익만 생각하는 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워 부적절한 수술을 받았다. 매년 유사 사건이 수건씩 터져 수사를 받지만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공론화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법은 명백한 의료범죄를 의료과실이라 말한다. 검사는 가해자의 편에 서서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국회는 수술실CCTV 의무화를 막으려 했고 사실상 무력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언론이야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법정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이토록 컸는데 이나금 어머님은 어땠을까. 평범한 여성이 시민단체 대표가 되기까지 겪어낸 고난이 어떠했을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상고기각, 사실상의 승리를 알리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법정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감히 그를 위로하지도 못했다. 언론이 사건을 망치는 과정도, 검찰이 유족을 해하는 모습도 나는 가까이서 보았다. 오늘의 승리를 오로지 유족과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이토록 척박한 토양에도 희망이 깃들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이 승리가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오늘 하루 동안 법원에서 나를 붙들고 저들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없어 안타깝다. 아마도 언론 안에 있었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껏 기뻐하기로 하자.



2023. 1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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