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만 못 보는 공익성, 다큐멘터리는 죄가 없다

오마이뉴스 까임,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 비평

by 김성호

이달 24일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이 항소심 재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2월 서울 서부지법 폭동 당시 법원 내부에 진입한 것이 불법침입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같은 시각 역시 법원 내부로 들어간 'JTBC' 취재팀이 법적 처벌을 피하고 기자상까지 받은 것과 대조된다. 지난 십 수 년 간 제주 강정마을, 국가보안법 문제, 세월호 침몰참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까지 꾸준히 사회문제를 다뤄온 이 다큐인의 기록행위가 언론의 그것과 어째서 달리 판단돼야 했던 걸까. 나는 도무지 그를 납득할 수 없다.


같은 시각 법원 안에선 같은 행동을 한 이들이 여럿이었다. 누군가는 기자였고, 누구는 유튜버였으며, 정윤석은 다큐 감독이었다. 기자들은 형법상 정당행위, 즉 저널리즘이란 공익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법원 내부 침입이란 불법적 수단이 불가피했다고 판단됐다. 위법한 행위이되 그 위법성이 공익적 목적으로 조각된다는 것. 그렇다면 다큐 감독, 그것도 발표된 필모그래피가 분명히 존재하는 정윤석의 기록행위는 왜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까.


이 결정을 오판이라 여기는 나는 문제가 정윤석에게 있다고 보지 않는다. 법원, 그리고 사회가 다큐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여긴다. 다큐에게서 공익성을, 저널리즘을 읽어내지 못하는 태도 말이다.


IE003565155_STD.jpg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책 표지 ⓒ 커뮤니케이션북스관련사진보기


공익성, 다큐엔 없고 언론에만 있다고?


독립 영화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영화가 정말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사회의 어떤 부조리를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죠. 여러 방법 중에서도 문화의 힘이 크고, 그중에서도 영화가 가진 힘이 크기 때문에 영화를 선택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예요. 그런데 전 반대였어요. 극영화를 하고 싶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거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 뒤에 따라온 겁니다. -224p, 김명준 감독의 말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는 영화연구자 형대조 교수가 다큐계에서 활약하는 국내외 감독과 PD를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모두 27명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베이비 루스 빌라마마, 다니엘 지브, 텐진 체덴 촉레를 제외하고 24명이 한국 출신 영화인이다. 대다수가 한국 다큐계 중추라 해도 좋을 인터뷰이들이 다큐를 지속하는 이유, 지향하는 목표, 현실적 어려움까지를 솔직하게 풀어낸다. 방송다큐와 독립다큐란 전통적 구분과 사회참여적 다큐와 팝다큐라 불리는 새로운 흐름의 대비 가운데서 갈수록 좁아져만 가는 다큐의 영역을 지키고 희망을 모색하려는 움직거림이 이 책에 담겼다.


문을 여는 건 방송다큐 PD들이다. <추적 60분>과 <KBS 스페셜>을 담당하고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KBS PD, 역시 <추적 60분>을 비롯해 북한 관련 다큐를 여럿 제작한 류종훈 KBS PD, 양질의 다큐를 꾸준히 만들어온 정성욱 EBS PD, <학교의 눈물>을 제작한 한재신 SBS PD, EBS가 주관하는 EBS국제다큐영화제를 담당한 오정호 EBS PD 등이다. 아무래도 대중에게 방송다큐가 더 익숙한 때문일 텐데, 방송국 직원으로 다큐를 제작하는 이들의 현실적 고민부터 제작환경의 문제 등이 얄팍하나마 두루 언급된다.


책이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는 건 독립다큐 감독과 제작자들이 등장하면서다. 몸담은 직장 없이, 혹은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채 독자적으로 재원을 마련해 다큐를 제작하는 이들의 솔직한 응답으로부터 그들이 결코 녹록치 않은 오늘을 긍정하며 내일로 나아가는 이유를 읽어낼 수 있다. 박봉남, 안재민, 이승준, 김민철, 이은(이상 PD), 경순, 김동원, 문정현, 태준식, 홍지유, 홍형숙, 백연아, 권효, 백승화, 아오리, 이호재, 오정훈(이상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방송국에 작품을 납품하는 걸 근간으로 해온 독립 PD와 영화제 상영부터 극장 개봉, 공동체 상영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감독의 차이가 있을 뿐, 방송국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독립다큐로 분류된다.


12년 '인간극장' 제작, 퇴직금도 못받았다


제작자가 방송에 열정을 쏟는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예요. 우리 같은 창작자의 권리가 능력과 관계없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현실이 더 크다는 게 우리를 힘들게 하죠. -148p 안재민 PD


올해 10월 서울남부지법에선 KBS 간판 다큐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12년 간 제작해온 독립PD가 외주제작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촬영과 편집을 프리랜서 계약으로 위탁받았다고 해도 업무형태부터 워크숍이며 송년회 참석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노동자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팀 14명의 제작진 가운데 대다수가 프리랜서 신분이었다고 했다. 제작기간 동안엔 직원처럼 부렸지만 정작 계약관계가 해소될 땐 퇴직금조차 주지 않으려 들었다. 어디 외주제작사만의 문제일까. 프로그램 제작을 외주업체에 맡기고 구체적인 상황은 나 몰라라 하는 방송국의 문제가 근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시작한 감독으로서 이 정도 하면 먹고 살 수 있고, 기본적인 삶이 보장된다는 걸 모범으로 보여 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그게 안 되니 많이 안타깝고 미안하죠. -257p 문정현 감독


방송에 다큐를 납품하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립다큐 PD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영화제며 국가기관, 기업 등으로부터 제작비를 따내는 피칭부터가 쉽지 않을뿐더러, 제작비 지원을 받더라도 영화 바깥 삶을 영위할 돈부터가 쪼들리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극장 상황, 그중에서도 관객이 들지 않는 다큐의 현실 때문이다.


자연스런 일일 수 있겠다. 누구나 다큐멘터리가 뭔지는 안다. 그러나 이달 본 다큐를 물으면 십중팔구 '인간극장' 같은 TV편성물, 아니면 그조차도 없게 마련이다. 방송국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한 다큐영화를 보는 사람은 길가에 심긴 포플러나무만큼 마주하기 힘든 존재다. 시장이 외면하니 존재할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음을 이 책이, 또 이 책에 말을 얹은 이들의 작품이 증명한다. 적어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그렇게 외친다. 목소리가 닿는 데까지.


법원·검찰만 못 보는 공익성, 다큐멘터리는 죄가 없다


방송국에서 자본주의 논리를 가지고 단지 관객들의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건 순서가 잘못된 말이에요. 관객들이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려면 방송국의 정형화된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독립 영화계의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관객들의 관심이 생길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영국의 BBC에는 전 세계에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 중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골라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또한 이 프로그램을 위해 전 세계의 다큐멘터리 감독을 대상으로 작품 공모를 해서 제작 지원도 하거든요.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히고 지속적인 제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런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공중파 방송이 그렇게 하지 않죠. -324p 백연아 감독


국민이 낸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조차 다큐를 충실히 제작하고 방영하지 않는다. 같은 공영방송인 BBC와의 비교는 민망할 따름이다. 다큐가 지닌 유효함에도 시청자가 그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 결과로 한국의 시민들은 전 세계 다큐가 전하는 발빠르고 생동감 있는 사실들에 다가서지 못한다. 지난 몇 년 간 세계적 수준의 다큐들이 기성 언론이 닿지 못한 이 시대의 온갖 진실을 파헤쳐 전해왔단 걸 고려하면 이는 책임의 방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뿐인가. 외주업체며 독립PD들이 처한 생태계를 개선하려는 노력 또한 전무하다. 그 결과가 상식에 못 미치는 현실, 제 간판 프로그램을 12년 간 제작해온 외주PD가 퇴직금조차 소송을 거쳐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 글로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독립 다큐인들을 움직이는 것이 무언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 비용 때문에, 그것이 효율적이란 이유로 언론이 현장에서 철수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언론이 떠난 자리를 지켜온 독립 다큐 감독들이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 마땅하다.


한국 3대 다큐영화제 중 하나인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올해 마련한 포럼 '현장, 연대, 그리고 다큐'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 자리에 나선 어느 감독은 각종 소수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기자를 만나기가 몹시 힘들다고 증언했다. 일선 취재기자로 6년을 일한 나는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월급쟁이 기자가 비운 자리를 무급의 활동가며 다큐감독들이 지키는 모습을 수시로 목격했으므로. 언론이 떠난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힘은 무엇이었나. 누군가는 현장을 기록해 알려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아니었나. 이 책 곳곳에서 엿보이는 것도 그와 같은 것들이다. 사회에 대한 책임, 그를 알려 동료 시민을, 세상을 변화케 해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 말이다.


1980년대에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에 자극을 받은 여러 선배가 함께 <파업전야>를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미디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대신해 줘야 한다, 공동체를 이뤄 이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261p 태준식 감독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과 분출하는 창작욕구, 스러지는 것들의 곁을 지키려는 책임감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카메라 하나를 무기로 각자의 현장에서 담아낸 풍경들이 다큐 안에 있다. 책을 읽으며 이 시대 다큐의 현장들이 궁금해진다. 바로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충분하다.


지난 몇 년 간 영화평론가로 수많은 다큐를 본 결과로써 나는 다큐가 언론 못지않게 공익성을 추구하고 이행해왔단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나는 비로소 상당수 다큐인들이 스스로 저널리즘적 역할을 놓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들 중 하나인 정윤석이 어떻게 유죄일 수 있다는 말인가!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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