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엔 간디의 서재가 있습니다

인도 뭄바이

by 김성호


색채로 가득한 5월입니다. 각자의 색을 발하며 다들 안녕하신가요?


저는 인도 뭄바이에 1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단 출장이며 관광에 가까웠지만 그 속에서도 잊지못할 순간을 새기고 돌아왔죠. 저 쾨니히스베르크의 칸트 같은 현자가 아닌 다음에야 부닥치고 깨지고 생각하고 표현하며 더디기 짝이 없는 성장을 해나가는 게 숙명이라 할 겁니다.


뭄바이는 자타공인 인도 최대 상업도시입니다. 금융과 각종 산업의 중심지며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화산업의 본산이기도 하죠. 대니 보일의 명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신 분이라면 영화의 배경인 뭄바이가 더욱 친숙하실 겁니다.


뭄바이의 발달은 지리적 이점에 기인한 바 큽니다. 인도 서부 아라비아해 연안에 위치한 뭄바이는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영국의 동방진출에 거점 역할을 했죠. 영국과 인도를 잇는 최단거리 항로에 닿아있기도 했거니와 기후와 지세, 정치·사회적 고려 등 모든 부문에서 거점이 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덕분이었습니다.


식민거점도시가 대개 그렇듯 인도내 모든 철도는 뭄바이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이 지역은 인도 경제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죠.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던 영국의 금융시스템이 이식됐고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영어가 주요언어로 자리잡았습니다. 물류와 금융, 문화까지 근대 도시의 필수요소를 두루 갖춘 뭄바이는 근대화를 겪는 국가의 대도시가 대개 그렇듯 주변지역의 인구를 급속도로 빨아들여왔죠. 뭄바이는 세계에서 인구밀도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시지만 여전히 돈을 벌려는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몰려들고있습니다.


뭄바이는 대규모 슬럼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리돈으로 1조원을 훌쩍 넘는 집이 우뚝 서 있는 도시입니다. 십수개의 초고층 빌딩이 늘어선 해안을 따라서는 당장이라도 멈출 것만 같은 고물차가 울렁울렁 나아가죠. 뒤에선 삐까뻔쩍한 고급 세단이 우악스럽게 경적을 울려댑니다. 대로변의 그럴듯한 가게들에선 거리를 배회하는 거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압적인 경비원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뭄바이 도심 스타벅스에 붙은 가격표는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죠. 지난해 인도 1인당 국민소득이 1610불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3000년 넘게 이어졌다는 카스트제도는 자본주의 앞에 자리를 내어준지 오래인 듯합니다.


간단히 감상만 적으려했는데 서두가 길었네요. 뭄바이에서 머무는 동안 호텔과 식당, 카페 외에 나다닌 곳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마니바반이라 불리는 간디기념관은 뭄바이에서의 다른 모든 기억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본래 간디의 친구가 살던 집이었지만 간디가 자주 머물렀고 훗날 반영 저항운동의 본부가 돼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라고 합니다. 간디가 물레를 배운 곳도 여기였다고 하죠. 간디가 즐겨 읽은 책을 비롯해 5만권이 넘는 장서가 도서관 형태로 소장돼 있기도 합니다.


흔히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들 하는데 이건 멍청한 말입니다. 호랑이 가죽이야 쓸 데가 많지만 사람이 죽은 뒤에 남은 이름이야 주입식 교과 밖에선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수정돼야 마땅합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뜻을 남긴다고요.


뜻 이전에 관점이 있고 뜻 이후엔 업적이 있습니다. 뜻의 현재적 표현은 사상이며 행동입니다. 그러니 뜻을 넓게 이해하면 관점과 업적, 사상과 행동이 모두 포함됩니다. 사람이 죽은 뒤 남는 건 이 정도일 겁니다.


떠난 이가 남긴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이야 여럿이 있겠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서재를 보는 걸 최고로 칩니다. 효용면에선 망자가 남긴 작품을 접하는 것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서재로부터 뜻을 읽는 건 수준 높은 퀴즈를 푸는 것과 같은 재미가 있거든요.


사람의 뜻에는 고유한 색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재라 불려 마땅한 모든 서재엔 주인의 색채가 담긴 한 칸이 있죠. 서재를 본다는 건 그 한 칸에 밴 색채를 읽는 일입니다. 그 칸엔 서재의 주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관된 관점이, 그로부터 뿌리내려 자라난 뜻이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여러 서재를 봐온 저는 그 한 칸이 서재의 가치를, 주인의 품격을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그 한 칸이 있는 곳이라면 열권의 책만 있어도 진짜 서재라 할 만하고, 없다면 만권의 책이 있어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한 칸에 자리한 색채를 읽어, 그로부터 나름의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간디의 서재도 그렇습니다.


다리가 좋지 않은 저는 기념관을 1층밖에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서만 위로 올라갈 수 있더라구요. 하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해도 올라가지 않았을 겁니다. 1층이 간디의 서재였거든요. 생각지도 못한 서재, 그것도 간디의 서재라니!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탐색에 들어갔죠. 수업은 빼먹어도 도서관과 서점은 빼놓지 않고 다녔던 지난 시간들, 군생활 말년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끝내주게 멋진 도서관을 만들어낸 기억도 되살아났습니다. 인도까지 끌려와 지낸 아프고 지루한 시간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죠.


그렇게 찾아낸 한 칸, 짜릿하더군요. 5만권의 장서, 간디가 읽었다고 써붙여진 수백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50권 정도가 꽂힌 그 책장이 바로 간디의 한 칸이었습니다. 유레카!


기번의 <로마제국흥망사>, 웰스의 <역사의 개요>, 쇼의 희곡과 에머슨의 에세이, 그리고 수많은 톨스토이 관련 저작. 직접 톨스토이와 주고 받은 서간집, 플라톤이 남겼다고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 셰익스피어와 위고, 괴테, 디킨스, 데포의 작품들. 로마법과 기독교, 막스·레닌주의에 대한 관심. <사무엘 존슨전>을 비롯한 전기문학의 걸작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포함한 러스킨의 평론집, 그밖에도 시간의 심판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명작들이 그의 한 칸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간디의 책장엔 강대국의 총칼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이빨을 명확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법을 구하는 지식인의 고뇌가, 민중에 대한 애정과 시대를 초월한 정의에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물질 이면에 깃든 빛나는 가치들과 그에 의지해 일어선 문명에 대한 관심, 더불어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끌림도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책을 통해 읽은 어떤 문장도 이보다 더 간디를 잘 설명하고 있진 못했습니다.


혹시 인도에 가실 계획이 있다면 이렇게 추천하고 싶네요. 뭄바이엔 간디의 서재가 있습니다.



2016. 5. 22. 일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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