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어쩌면 조금은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지나간 봄날을 떠올린다.
붕대감긴 막대자의 저릿한 감촉
핏기없는 볼에 뱀처럼 휘어감기던
사백대 아니 그보다 많이
미성숙한 영혼은
마음을 닫았다.
졸업 그리고 입학
그러나 변함없이 계속된
그 통곡같은 회색의 몸부림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던
시지프스는 차라리 행복했으리.
미쳐버린 자들의 학교
아무도 오지 않는 집
그 안에서 썩어가는
갈라진 영혼의 냄새
바지런한 부모조차 열지 못했던
그 역겨운 녹색 대문을 들여다 보면
하수구에 늘어진 검정 머리칼같은
징그러운 무엇인가 꿈틀대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곳에서
추하게 눕혀진 엉성한 존재는
사랑이 고독을 쫒지 못함에
몹시도 절망한나머지
천천히, 그러나 기꺼이
죽어버리고자 하였으나
죽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고자 하는 본능을 누르지 못한
볼품없는 영혼을 대면하고는
그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진 목련꽃잎 뭉개며
사라지는 계절 뒤에 욕설을 박았다.
인간들의 흔해빠진 분노는
표류하는 영혼을 깨우치지 못했나니
천권의 책과 천편의 영화도
금지된 술 한잔보다 못한 시절이었다.
그러다 늙은 계절이 가고
다시 몇번째인지 모를 봄이 왔는데
그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하고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까지 변하여
헤어짐을 배우지 못한 존재는
속으로 속으로
절망스런 비명만을 눌러담았다.
사백번의 구타와
지옥같던 외로움을 버텼지만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토해낸 비명
이것만은 이것만은
오직 이것만큼은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버려졌던 존재는,
아니 몇번의 봄을 보내고도
한번도 봄을 산적 없었던
새하얀 미경험의 결정은,
한 번도 열린적이 없었던
녹슨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고
존재가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면
이 날이야말로 이 늦되고 나약했던 존재의
찬란한 독립일로 기억될 것이라
그렇게 믿으면서.
2008. 6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