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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쌍용자동차 사태를 보고

작문

by 김성호

당신도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쌍용차 사태를 보고


최근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쌍용자동차 사태가 막판 극적인 협상으로 77일만에 마무리됐다. 과거 코란도와 무쏘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쌍용자동차가 이런 상황에 처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노사의 날 선 대립 끝에 파국을 향해 치달은 것은 분명 쌍용자동차가 처한 오늘이었다.

정부의 속내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평택 시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여론은 쌍용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래왔기에 일단은 막판 대타협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간 쌍용차 노사가 빚은 폭력적 대립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가져오지 못했으며 대치하고 있는 노조와 경찰 양측에 소모적인 고통만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쌍용차 사태에 관해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상하이차가 알맹이만 뽑아먹고 버린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서는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를 허가받을 필요가 있고 이 절차를 신청하기 위해 대량정리해고를 실시하겠다는 사측의 결정이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논점은 대량정리해고가 쌍용차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냐는 점이었을텐데 지금까지 발표된 결과만으로 보면 함께 다른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방안을 들이댄 사측의 태도가 이번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 아닐까 한다.

지난 달 삼일회계법인이 법원에 제출한 쌍용차의 가치평가를 보면 계속기업가치 약 1조3276억, 청산가치 약 9386억으로 쌍용차를 회생시키는 것이 약 3890억의 이득이 된다고 하여 사태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되고 적절한 회생변제계획안이 있을 경우 법원이 쌍용차의 기업회생절차를 인가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정리해고안을 밀어붙여 노조측과 갈등을 빚은 사측의 선택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노조측이 제안한 협상안을 살펴보면 회사의 정상화에 적극협조하며 무급휴가 2교대 등을 통해 회사에 남는 한에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인데 그럼에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해고안을 들이미는 태도엔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해고 이후 또 다른 정리해고가 없을 것이란 약속조차 없이 밀어붙여진 정리해고안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문제가 숨어있지 않은가 하고 의심되는 것이다. 쌍용차를 회생시키고 계속경영 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 말고도 다른 방안들이 충분히 있을 것인데 이런 파행적인 상황까지 감수하면서 해고 만을 주장하는 것은 혹시 고용승계 등의 절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 없이 쌍용차를 팔아먹기 좋게 만들겠단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닐런지.

이명박 정권의 집권 이후 경기불황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여러 기업들의 구조조정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쌍용차사태는 그 시발점이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친기업적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쌍용차 사측과 노조 사이의 대립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안임에 분명하다.

지난 세월동안 정부와 기업들은 끊임없이 약자들에게 희생을 주문해왔다. 지금은 케익의 크기를 키울 시기이지 나눌 시기가 아니라는 진부한 이유만을 반복해 말하며 언제 도래할지 모를 분배일까지 약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해온 것이다. 기업의 물건을 더 팔기위해 농민에게, 축산업자에게,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의 태도는 그 얼마나 폭력적인가. 도대체 약자들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쌍용차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데 경영진의 경영실패와 정부의 검증절차 없는 해외매각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과 정부는 그들의 잘못으로 비롯된 고통을 오직 노동자들에게만 짐지우려 하니 이런 상황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평택이 지역구인 의원 한명이 다녀간 것을 제외하면 집권여당은 쌍용차 사태에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정부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의 대립은 파국으로만 치달았고 저항하는 노동자와 진압하려는 경찰의 대치는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적인 시위를 벌인 노조측에게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가해진 공권력의 진압방법은 얼마나 많은 문제를 보였던가. 농성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체제를 전복하려는 위험분자도 아닐진대 그들을 마치 테러범을 진압하듯 폭력으로 짓밟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폭력에 같은 수준의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공권력이라면 공권력과 폭력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들에게 화염병을 들게 한 것은 사측과 정부였고 그들에게 화염병을 놓지 못하게 한 것 역시 사측과 정부였는데 어째서 이들이 이 사태의 모든 잘못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들은 앞다투어 자극적인 대치상황만을 보도할 뿐이고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원인에 대해서는 주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어 국민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언론마다 그 성향이 다르다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왜곡보도하고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하여 그들의 일자리를 위태롭게 만든 당사자들이 그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 상황에서 '파업만능주의'와 '이기주의', '반시장'이라는 단어를 도대체 어떻게 떠올릴 수 있었다는 말인가.

정부가 초래, 혹은 기여한 경제위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흔들리게 된 회사를 검증되지 않은 외국기업에다 매각하고 그 기업에게 먹튀를 당해 만신창이가 되 돌아온 회사에 다시한번 희생을 이야기하며 칼을 들이미는데 이런 경우에도 노동자는 약자라는 이유로 희생해야 하는가. 도대체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희생해야만 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폭도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폐허가 된 도장공장에서 발견된 굳지 않은 도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와 언론, 사측이 암묵적으로 폭도로 규정하고 물 한 방울조차 반입하지 못하게 한 채 진압에 전념했던 대상들이 단전된 공장 내부에서 임시발전기를 돌려가며 도료를 굳지 않도록 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쌍용공장의 정상화를 누구보다 바랬던 것은 정부나 사측이 아니라 해고통지를 받은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굳지 않은 도료로부터 읽을 수 있다.

77일을 끌었던 농성의 결과는 대타협이라기보다는 약자의 패배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52%의 노동자는 회사를 떠나야 하고 농성을 주도한 직원들은 무더기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 말이다. 사태가 끝나자 마자 검찰은 쌍용차사태를 주도한 '외부세력'과 '강성노조'를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데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생각해보면 암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민주주의는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할 때에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 쌍용차사태를 포함한 정부의 정책기조는 오직 단 하나, '가진자를 위한 효율 제일주의'뿐인 듯하다. 기업이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하고 노동자는 부품처럼 쓰여지다 버려지는 세상이 우리네 높으신 분들이 꿈에도 그리는 세상인것 같아 괜시리 이땅의 모든 약자들에게 참을 수 없는 연민이 샘솟는다. 사회는 점차 양극화되고 약자들은 더욱 약자가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언제까지 우리는 내가 저들의 표적이 아니라며 안심하고 있을 것인가. 나는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정말이지 치욕스럽다.


2009.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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