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김대중 대통령께.
여든 다섯, 사람답게 살기엔 지나치게 험난했던 세월을 끈질기게 헤쳐오신 당신께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이 있어 우리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 당신은 곧 우리입니다.
이 땅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것들을 위해 스스로를 아낌없이 던져온 당신의 지난 발자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경외마저 불러일으킵니다. 당신을 알고 난 이후, 당신은 항상 제게 특별한 존재셨습니다.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지만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당신께서는 언제나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계셨지요. 언제나 그렇듯 그건 정말이지 흔치 않은 능력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승리하셨고, 이 땅에 오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세상은 전과 같습니다. 당신이 없어도 봄은 오고, 내일 아침엔 해도 뜰테고, 시내로 가는 차도 어김없이 달리고, 조수는 밀려오고, 지구는 돌겠지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이 떠난 세상이 전과 같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당신을 필요로 하는데 당신께선 더이상 그 자리에 계시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빈자리를 누가 있어 채워낼 수 있을까요. 막막할 뿐입니다.
나이든 당신의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기대해야만 했던 우리의 모습에 송구스런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여 당신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너무도 큰 분이셨던 탓에 당신을 필요로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을 필요로 했던 우리의 모습에서 어떤 희망의 조각을 발견하는게 근거없는 기대 만은 아니겠지요.
한 생애 수고하셨습니다. 부디 저 곳에서는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2009. 8. 1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