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광수에게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란 단어는 '입시'와 동의어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그 입시의 끝에 대학이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대학을 목적으로 하는 긴 트랙에 뛰어들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려 12년의 세월을 보낸다. 오직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죽어있는 공부와 무의미한 경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 트랙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대학에 가지 않고는 사람답게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적어도 주류에 편입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대학을 나오더라도 실업률이 만만찮은 세상이라지만 고졸과 중졸 실업률은 그보다 훨씬 더 높고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개선될 것 같지 않아 보이니 비교는 무의미하리라 생각한다.
과거엔 대학을 나오기만 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기에 이렇게 획일화된 무한경쟁의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었다면 지금은 이미 확립된 시스템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에 사람들이 트랙에 맹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트랙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K, 네 말대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 트랙을 걷게끔 하는 이유라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길 만을 안정된 길로 만든, 그로써 단지 트랙을 벗어나는 일조차 지나치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하게 한 이 사회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 하나의 길조차 그리 안정되어 보이지는 않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를 트랙으로 몰아넣는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니 어느 세상에서도 모두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원하는 걸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를 낙오자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물론 트랙에 뛰어들고 말고는 그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 사회가 개인들에게 상당부분 트랙에 뛰어들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 트랙은 상당히 왜곡된 모습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이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말하다>라는 글에 적어두었으니 찾아보아라 - 오랜 시간동안 기능해온 시스템은 이제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린채 무한경쟁의 트랙 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있는데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것인지 난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이젠 누구도 대학이 대학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건 대부분 대학 밖에서 그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도 배울 수 있는 것들 뿐이고 약간의 상상력도 창의력도 없는 것들 일색이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에서 본다면 대학은 입시제도가 만들어낸 서열주의에 기대 졸업장을 팔아먹는 이익집단 쯤으로 전락해버린 듯 하다.
과연 현재의 입시제도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아마도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과 대학, 그리고 기업들 뿐이지 않을까. 모든 경쟁을 이겨내고 일류대에 입학한 '스펙좋은' 이들을 최소한의 노력과 비용으로 영입할 수 있게 된 기업과 그런 기업에 입사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사람들, 그리고 이 시스템에 기생하는 대학이야말로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닌가 말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막대한 빚을 떠안고 심지어 낙오되기에 이른다. 상당부분 자본주의에 종속되어버린 우리의 교육제도 아래에선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낙오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트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트랙을 걷는 사람들보다는 트랙, 그 자체에 있는 듯하다. 굳이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 무한경쟁의 트랙을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스스로를 트랙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대체 무엇이 정당화될 수 없을까?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도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트랙을 무너뜨리는 것 만으로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수천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그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대학, 사학법 개정에 앞장서 반대하고 학생들과 대립하는 대학, 고시합격과 취업률을 제일의 자랑으로 여기고 이를 광고하는 대학, 입시제도 하의 순위경쟁에 열올리는 대학,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는 대학, 사회의 문제들에 눈감는 대학, 나는 수많은 부조리를 양산하는 우리사회의 대학이 진정한 교육을 하는 학문의 전당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이 모두를 통찰하고도 이 트랙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어느정도는 그 스스로 위악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김예슬양도 그런 의미에서 위악이란 표현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한다. 이미 위악을 강요하는 트랙에 뛰어든 개인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별문제고 말이다.
김예슬양의 선택이 옳다거나 옳지 않다고 그 가치를 재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퇴는 어디까지나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내린 선택이니까. 다만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자 했고 어느정도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나는 그녀의 행동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선택을 나에게 적용하여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픈 마음도 없다. 트랙 속의 개인에게 트랙을 벗어날 것이냐 아니냐는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니까. 모두에겐 각자의 삶과 문제들이 있는 법이고 말이다. 다만 나는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을 조용히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에곤 쉴레의 표현을 빌려 요람에 든 갓난아기의 수준을 넘어선 몇몇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만 줄인다.
그럼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2010. 5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