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 일명 '패륜녀 사건'에 부쳐
타인의 도덕적 잘못을 비난하기는 쉽다. 비난하는 사람은 적어도 비난하는 순간 만큼은 비난받는 이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을 테니까. 그러나 도덕적 우위가 곧 타인을 비난할 수 있는, 혹은 비난해도 되는 권리를 부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타인의 도덕적 결함에 대해 비난하고 나아가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도덕적인 것일까. 굳이 너희 중 죄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 했던 예수의 예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우리 중 한 명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비난의 돌멩이를 던질 수 있는 권리따위는 없다.
루저녀, 패륜녀, 발길질녀, 기타 등등. 일련의 사건들이 보여주는 이 시대의 인격에 개탄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에 다시 한 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던 옛사람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난의 행렬에 합류하는 지금의 사람들은 얼마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안의 본질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의 의미도, 그것이 이끌어낼 결과도 파악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스스로의 분노를 모두의 분노에 더하는 행위는 과연 얼마나 쉽고 또 위험한 것인가.
사람들은 어째서 이리도 쉽게 분노하는가. 어째서 분노를 아무렇게나 배설하려 하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약간의 자제심과 통찰력도 발휘할 수 없도록 하였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분노하게 했는가. 우리의 왜곡된 교육이? 아니면 경제가? 끝없는 경쟁과 불안정한 삶이? 천박한 문화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거나 그 모두일지도 모른다. 나의 관심은 사람들의 분노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과 분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건 우리가 분노한 이상 분노는 우리 자신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분노로 다른 이를 상처입히지 않아야 한다. 타인에게 해를 입힐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분노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정당한 권리가 있지 않는 한 그 분노는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닌 분노를 공분의 형태로 표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야만적인 행위다. 공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진정성있는 반성의 가능성을 박탈당할 것이며 용서할 수 있는 이는 용서의 여지를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원인이 된 행위로부터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아도 옳지 못하다. 타인의 잘못을 자신의 우월하다고 믿는 도덕적 지위에 기대어, 심지어 심판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없으면서도, 심판하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사랑받을 만한 이를 사랑하는 것과 용서받을 만한 이를 용서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한다면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물론 이는 쉬운 길이 아니며 때로 어렵고 기분이 내키지 않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는 분명 우리가 오랫동안 꿈꿔 온 세상이, 적어도 그 세상의 단서가 있음이 분명하다.
타인은 곧 우리 중의 하나이기에 우리는 타인의 잘못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만 한다. 타인의 잘못에 분노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때때로 나는 너희들이 / 너희들 중의 하나가 잘못을 행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 너희들은 마치 그 사람이 너희중의 하나가 아닌, / 너희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거나 / 너희세계에 뛰어든 침입자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나는 말하나니 아무리 거룩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 그대들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있는 고귀함보다 높이 오를 수는 없는 것이고 /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악하고 약한 자라 할지라도 역시 그대들 각자의 안에 있는 / 가장 낮은 곳보다 더 낮게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리고 단 하나의 잎사귀도 / 나무 전체의 말없는 이해 없이는 노랗게 물들 수 없는 것처럼 / 너희들 중 잘못을 행하는 자도 / 너희들의 숨은 뜻 없이는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는 것이며 / 너희들은 너희 안의 신적 자아를 향하여 / 마치 하나의 행렬처럼 함께 나아가는 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바로 그 길이며 나그네이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에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2010. 5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