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사연 많은 땅이다. 악랄한 개척자 바스코 다가마와 용감한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넘은 희망봉이 있는 나라. 이권을 노린 열강이 각축을 벌였고 그 끝에 선 영국으로부터 오래도록 고통받은 땅. 그로부터 마하트마 간디가 청년시절을 보냈고 마침내 넬슨 만델라와 데스몬드 투투라는 거인이 태어난 곳. 사자와 마주서도 떨지 않았다는 줄루족의 용맹함이 그저 전설로만 남아 있는, 영국에서 끌려온 셀 수 없이 많은 인도의 자식들이 이제는 제 나라로 알고 살아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우리 배가 닿았다.
더반에 도착한 4월 26일은 남아공 최대의 국경일이다. 일흔이 훌쩍 넘은 만델라가 남아공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날을 기리는 일명 '프리덤데이'. 여전히 백인이 이권을 쥐고 대다수 흑인과 인도계 노동자들은 가난에 시달리지만, 아파르트헤이트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고 임기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만델라가 존경할 만한 정치가란 사실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백인 기득권에 맞서 권력을 쟁취한 아프리카 다른 민족 지도자들이 대부분 독재자로 전락해 고국을 비탄에 빠지게 한 것을 돌이켜 보면 만델라의 결단은 더욱 빛이 난다.
만델라의 제일가는 업적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훌륭히 풀어냈다는 데 있다. 일상에서 흑백을 갈라놓는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내고 흑과 백이 법적으로 차등없는 인간임을 공표한 점, 그로부터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며 새 시대를 열어낸 것이 정치가 만델라가 남긴 위대한 업적이다.
남아공은 만델라의 후인들이 내리 집권한 지난 20여년 동안 무능과 부패, 산적한 사회문제로 혼탁한 상황을 겪어왔다. 하지만 만델라와 투투가 연 길에 대한 지지만큼은 조금도 변화가 없는 듯하다. 투쟁가로는 테러나 다름 없는 게릴라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았지만 정치가로서 조국의 화합과 번영만을 꿈꾸며 과거의 적과도 손을 마주잡은 그다. 만델라의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 남아공이 아프리카 대륙 제일가는 상업국가로 자리할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다.
한국에서 8000해리 떨어진 남아공 더반에서 남과 북이 오랜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를 선언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감격으로 다가오니, 고국에 발 붙인 이들이야 오죽할까.
대륙을 잇는 바닷길을 발견한 디아스처럼, 갈등을 끝내고 화합의 시대를 연 만델라처럼. 아! 우리도 역사를 쓰고 있구나!
2018. 4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