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삶이 생각을, 그리고 글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래 전 내가 나의 영혼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었을 때, 내 글은 분노와 좌절, 적개심과 열패감 따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를 안온한 열망 가운데 두었을 때, 내 글 역시 그와 같은 건강한 기운을 가지게 됐음을 알았다. 그로부터 나는 다시는 내 영혼을 잘못된 곳에 머물지 않게 하리라고 결심하였다.
지난 경험에서 나는 좋은 글은 존중할 만한 삶과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존중할 만한,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직접 살아내고자 새로운 환경에 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내가 선 이곳은 대한민국 수입·수출을 책임지는 해운업의 최일선이며, 건강한 땀으로 수익을 올리는 노동의 현장이고, 나라의 법과 제도가 제한적으로만 적용되는 경계지대다. 이곳에서 보내게 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어떤 결실을 보게 될런지는 자신할 수 없으나 가치 있는 성취를 얻으리란 기대 정도는 간직하고 있다.
분무기로 물을 주듯 바다 가운데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다. 배 가까이 헤엄쳐와 장난을 거는 돌고래들과 푸우푸우 소리내며 물을 뿜는 고래들도 만났다. 중동의 밤바다를 붉게 밝힌 석유시추 플랜트의 불길 사이로, 문자 그대로 쏟아질 듯 흩뿌려진 적도의 별들 아래로, 바다 한 가운데 떠오른 커다란 무지개 안으로 배를 몰아간 날이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지난 시간을 불사르며 사라지는 석양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평온하고 잠잠하던 바다가 감히 계측할 엄두도 낼 수 없는 힘을 꺼내보일 때, 나는 가없이 하찮은 나를 보았다. 믿기 어려운 광경에 놀라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가, 짧은 이별에 탄식하고 돌아서는 날이 거듭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마다 뱃사람 주변을 맴돈다는 오랜 질문과 끝도 없이 마주쳤다. 나는 왜 바다로 왔는가.
처음 밟은 바탕가스 항구에서 화장 짙은 여자들과 시시한 농담따먹기를 하다가 그녀들의 반짝이는 아이들과 뒤섞여 한판 농구시합을 벌인다. 어쩌면 그녀들의 선배일지 모를 노점상 할매가 건넨 냄새나는 달걀을 받아들고서, 그 안에서 나온 병아리가 되기 직전의 무언가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입에 털어넣고 와그작 씹어버린다. 연약한 뼈와 부리는 탐욕스런 혓바닥 끝에서 흉측하게 으스러진다.
중동의 항구에서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가난한 나라, 그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네들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하는 척 하며 계약을 묻고 몸값을 묻는다. 그 악독한 환경을 이해하는 척 하다가도 그 형편없는 일처리에 부왁 욕지거릴 쏟아놓는다. 매일 수십톤 저질 기름을 태우는 상선 위에서 장갑 하나 버리는 일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는 것이 나다. 보아라. 얼마만큼 하찮은가.
바다는 육지에 두고 온 작고 평범한 것들을 시릴만치 그립게 한다. 그 그리움이 얼마나 더 쌓여야 나는 이 방랑을 끝마칠까.
2018. 5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