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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13. 2021

미국판 막장드라마, 적나라한 가족의 초상

오마이뉴스 게재,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영화평.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9]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메인 포스터 ⓒ와인스타인 컴퍼니


요즘 같은 무더위와 잘 어울리는 영화다.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의 8월, 열대조류조차 죽게 만드는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흩어져 남처럼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구강암을 핑계로 약에 취해 살면서 무차별적인 독설을 일삼는 엄마, 대학 장학금을 핑계로 다른 도시로 떠나 돌아오지 않던 맏딸, 어린 여자와의 바람으로 이혼위기에 처한 첫째 사위, 열네 살에 일찌감치 반항의 길로 들어선 손녀, 늙어가는 부모를 모시고 시골마을에서 나이 들어가는 둘째딸, 자립하지 못하고 늘 다른 남자를 찾아 떠도는 셋째딸, 이미 세 번 이혼한 그녀의 올해의 남자, 유독 아들에게만은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이모, 사람 좋아 보이지만 대마초에 취해 살던 이모부, 덜떨어지고 주눅 든 백수 사촌까지. 캐릭터만 나열해도 진이 빠지는 이 엄청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아버지의 초상(初喪)은 곧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肖像)으로 변한다.


8월의 오세이지 카운티라는 배경을 강조한 원제를 오독의 여지를 남겨두면서까지 뒷부분을 가족의 초상이라 바꿔 적은 데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흩어진 가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아버지의 초상으로부터 가족들 사이에 묻혀있던 해묵은 갈등의 씨앗이 움트고 마침내는 일그러진 가족들의 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오세이지 카운티의 숨 막히는 8월은 가족의 파탄을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장치이자 변하지 않는 상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인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올 때까지 이들 가족에게 평화란 찾아올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떠난 집에 박제처럼 남겨진 엄마, 그리고 그녀가 괄시하던 원주민 가정부의 품에 무너지듯 안기던 그 엔딩신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세이지 카운티를 떠날 수 없는 엄마는 마침내 그곳에서 마지막 숨을 내쉴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에야 어떤 생명도 뛰놀지 못할 무더운 들판에 잠깐의 겨울이 찾아오듯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고향으로 모이겠지.


남편과 아버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 세 모녀의 모습이 이들의 관계를 대변한다. ⓒ와인스타인 컴퍼니


세르지오 레오네의 그 유명한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턴>이 미국 서부영화들에 대한 헌시라면, 이 영화는 한국 십여 년 막장 드라마에 대한 헌시처럼도 보인다. 물론 제작자가 한국드라마를 봤다면 말이겠지만.


자살과 질병, 불화와 불륜, 약물중독과 정신적 도피, 애정결핍과 피해의식, 정신적 학대와 청소년 비행, 그리고 출생의 비밀까지. 한국의 여느 막장드라마를 한 편의 영화 속에 구겨 넣은 설정과 전개는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인생이 너무 길다던 T.S.엘리엇의 시구절로부터 시작한 이 영화가 당혹스런 죽음과 한 가족의 파탄으로 이어졌음에도 그저 황무지의 적막함을 노래한 시 한 수보다 못한 감흥만을 남겨 아쉽다. 할리우드에서 명품배우를 데려다 찍어도 무조건 명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만을 재확인할 뿐이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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