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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Aug 17. 2021

흥미로운 세계관과 촌스러운 클라이막스

파이낸셜뉴스 게재, <다이버전트> 영화평.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10]  <다이버전트>


다이버전트 메인 포스터 ⓒ라이온스 게이트/서밋 엔터테인먼트


[파이낸셜뉴스] 가까운 미래, 시카고.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세상, 사람들은 도시외곽에 커다란 성벽을 쌓고 각각 주요한 임무를 나누어 맡은 다섯개의 분파에 속해 살아간다.


타인에 대한 이타심을 중시하는 '애브니게이션', 용기의 '돈트리스,' 지식의 '에러다이트', 평화의 '에머티', 정직과 올곧음의 '캔더'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 다섯 부족은 공무수행과 안보, 학문발전, 생산, 법치의 임무를 맡아 서로간에 최소한의 접촉만을 가지며 공존한다.


영화는 애브니게이션의 일원으로 자란 베아트리스의 성인식, 그러니까 도시의 모든 열여섯 젊은이들이 제가 살아갈 부족을 선택하는 결정의 순간으로부터 시작한다.


열여섯이 된 도시의 청년들은 각자의 적성을 가려내는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적성을 판명받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자신이 속할 부족을 고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와 같은 적성을 물려받아 자신이 자란 분파를 선택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에브니게이션의 간부를 부모로 가진 베아트리스는 언제나 자유롭고 활기찬 돈트리스를 동경하지만 '핏줄보다 분파'가 중요해 성인식 이후에는 다른 분파와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회의 규약 때문에 고민을 거듭한다. 고민 끝에 그녀는 돈트리스를 선택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녀 앞에 열린 세상은 그녀가 그려온 상상 속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두 가지 장점, 흥미로운 세계관과 극적 긴장감


SF장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현실에서 경험한 적 없는 흥미로운 세계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다이버전트>는 매우 영리한 위치에 서 있다.


서로 다른 임무를 가진 다섯개의 분파로 나뉘어 살아가는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 서로 격리되어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에 구성원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를 제법 설득력있게 구현함으로써 비교적 효과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잡아끈다.


영화가 가진 두 번째 장점은 극 전반을 장악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그로 인한 긴장감이다. 겉으로는 철저하게 통제된 듯한 사회이지만 다섯개의 부족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존재가 끊임없이 나타나며, 지도부가 모종의 이유로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베아트리스는 성인식에 앞선 적성 테스트에서 자신이 다이버전트 중 하나임을 알게 되고 다이버전트와 연관된 위험을 깨닫게 된다. 이후 영화는 다이버전트란 사실을 감추는 베아트리스와 급박하게 돌아가는 돈트리스 부족 내의 상황을 맞물리게 함으로써 긴장감있는 전개를 이어간다.


뜬금없는 로맨스와 촌스러운 클라이막스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소녀들. 영화 속 용기를 숭상하는 부족 '돈트리스'의 성인식 절차 중 하나 ⓒ라이온스 게이트/서밋 엔터테인먼트


흥미로운 설정과 극 전반에 감도는 상당한 수준의 긴장감은 한스 짐머 특유의 웅장한 음악, 호쾌한 영상과 어우러져 중반까지를 힘있게 끌어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장점은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점차 힘을 잃고 마침내는 사그라지고 만다. 이는 전적으로 이야기의 경중을 모르는 한심한 구성과 조잡한 연출의 탓이다.


돈트리스의 구성원이 되어 트리스란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베아트리스. 그녀는 어려움 속에서도 돈트리스 출신이 아닌 신입대원들의 훈육을 맡게 된 포와 연애를 시작하는데, 아무리 젊은 남녀가 가까이 지내다보면 정이 들게 마련이라지만 이토록 급박한 상황 속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로맨스는 이야기에의 몰입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심지어는 그렇지 않아도 비실비실한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공감되지 않는 로맨스씬을 연출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반전을 가장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니 케이트 윈슬렛과 애슐리 쥬드 같은 검증된 배우들의 열연에도 영화를 구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생사가 오고가는 시가전의 현장에서 신병훈련소 각개전투교장에서조차 하지 않을 행동들을 거듭하다 주변인물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마다 신파적인 연출을 시도하기까지 하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아무리 10대를 대상으로 한 영화라지만 콤비네이션 피자 한 판 시켜놓고 핫소스와 파마산 치즈로 온통 범벅을 해놓으면 같이 먹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전반부는 SF장르의 특성을 한껏 살린 흥미로운 세계관이 돋보였고 중반까지의 긴장감있는 전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어떠한 가치있는 지점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웠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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