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비고
어머니는 평생 화초를 길렀다. 종일 일을 하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화초에 물 주고 가꾸는 일은 빼먹을 줄 몰랐다. 내게는 좀 예쁜 풀나무며 덜 예쁜 풀떼기인 것들이 어머니껜 하나하나 소중한 자산이었다. 식물도 사람 정성을 아는 건지, 우리집 베란다는 늘 풍성하고 화사했다. 내 집에서 죽어나가는 화초가 없다는 건 어머니의 자랑이었고 그런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건 나의 자랑이 될 법도 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단 한 번도 그 풀들을 좋아한 일 없었다. 때가 되면 흙을 갈아주고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화단에서 옥상으로 다시 옥상에서 베란다까지 옮겨주어야 해서는 아니었다. 베란다 구석자리까지 빽빽하게 차지하고 앉아서 가뜩이나 좁은 집을 더 좁게 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매번 별 감흥도 없는 식물을 가리키며 "아드을~ 저기 꽃핀 거 보고 가~" "여기 꽃봉오리 맺혔다~"하는 어머니를 대하는 게 불편하고 귀찮았다는 것, 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사는 연립주택에선 가·나·다 동을 죄다 뒤져도 우리집만큼 화초가 많은 집이 없었다. 많아봐야 손으로 꼽을 정도, 그마저도 말라 죽거나 얼어 죽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화초란 것도 생명이라 보통 손이 가는 게 아니다. 인생을 통털어 세 개의 생명을 관리했고 그 모두를 저 세상으로 보낸 나는 말 못하는 생명체를 기르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 번거로움을 감내하며 돈 안 되는 화초에 지극정성을 쏟을 사람이 내가 자란 동네에 얼마나 되었겠는가. 나는 내 어머니를 제외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본 일이 없다.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리고 내내 앓는 소리만 하는 어머니가 왜 정성으로 화초를 기르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병원에 가봐야 일을 나가지 말란 소리나 듣는다며 자리에 누워 끙끙대면서도 어째서 무거운 화초를 뒤집고 또 뒤집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음력 사월 초하루 당신의 생일이면 어머니는 두견베리아니 산세베리아니 흔해빠진 화초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사주면 특별히 잘 키울 거라며 화분 하나만 사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꽃집까지 팔목 잡혀 끌려간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곤 그 부탁을 들어드린 일이 없었다. 대체 그 식물이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더니, 그말 그대로였다. 야트막한 언덕 따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꼭 영화 속 요정의 마을 같았다. 항구를 따라 요트가 가득 떠있고 나이든 배는 갸우뚱 갸우뚱 소리내며 기울기를 반복했다. 날은 맑았고 공기는 시원했다. 호흡 긴 신호등이 몇번 쯤 빨갛고 파란 옷을 바꿔입을 무렵, 나는 비고 시내에 섰다.
썸머타임이 적용된 비고의 시간은 밤 열시가 넘어서까지 한창이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앉아 놀고 마시는 데 열심이었다. 노천카페마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풍경, 왁자지껄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온 도시가 환했다.
가게 주인이 거리악사에게 맥주 한 잔을 건네면 악사는 덤까지 얹어 길고 멋진 공연을 선물했다. 노천카페에 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길가에 털썩 앉아 오늘을 즐기는데 온 마음을 쏟았다. 돌로 단단히 닦인 도로와 낮고 오래된 건축물은 걷는 맛을 한층 돋웠다.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알고 있으나 만날 수 없는 오랜 기억 속 장면을 들춰본 것처럼 이 도시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문득, 엄마가 보고 싶었다.
도시 곳곳에, 사람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나 화초가 있었다. 아무렇게나 알아서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사람이 정을 주고 공을 들여 키운 화초며 나무들. 큰 집엔 어김없이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고, 창틀마다 올려진 화분이 거리를 화사하게 밝혔다. 미하일 가마쉬의 '프로방스의 아침'을 떠올리게 하는 거리를 걸을 때는 곁에서 엄마가 "아드을~ 저기 꽃핀 것 좀 보고 가자"할 것만 같아 "정말 예쁘네"하고 말해버렸다. 듣는 이가 없는데도.
어느덧 집까지 넉 달이다. 달력도 보지 않고 연락도 끊은 채로 앞만 보며 걸었는데, 뒤에 있으리라 생각한 것들이 앞에 있는 줄을 몰랐다. 똑똑한 척은 다 하고 살면서 이렇게나 어리석구나 싶었다.
돌아갈 때는 비고를 닮은 화초를 챙겨가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얘기해야지. "엄마~ 여기 꽃핀 것 좀 봐"하고.
2018. 5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