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비고(Vigo)를 떠난 지 3일 만에 플리싱언Vlisinggen에 닿았다. 비스케이만과 도버해협을 지나 북해에 이르는 900해리의 여정. 첫 관문인 비스케이만은 항해사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유명한 곳이다.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서부에 면한 큰 바다, 스페인 쪽은 빌바오·산탄데르·히혼이 프랑스 쪽엔 보르도·바욘·낭트 같은 도시가 자리 잡아 배가 끊이질 않는다. 북해와 지중해를 교통하는 상선도 비스케이만을 거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다. 청어·대구·다랑어·멸치·정어리가 떼로 잡히는 풍요로운 어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바다가 유명한 건 다른 이유에서다. 한 손에는 풍요를, 다른 손에는 재앙을 쥔 변덕스런 여신은 뱃사람의 도전을 끊임없이 좌절시켰다. 연중 거센 북서풍이 불고 높은 파도가 이는 바다는 지금껏 수천 척은 족히 되는 배를 집어삼켰다. 시도 때도 없이 국지성 집중호우가 퍼붓고 피항할 섬 하나 마땅치 않은 환경은 가장 노련한 항해사의 얼굴에도 그늘을 드리운다.
범선시대엔 어찌나 많은 배가 침몰했던지 범선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렸단다. 항해술과 조선술 발전으로 사고가 줄었다지만 비스케이만은 여전히 위험한 바다다. 1998년엔 Amoco Cardiz가 좌초됐고 1999년엔 Erica, 2002년엔 Prestige가 침몰했다. 이들 대형 유조선에서 샌 기름이 온 바다를 검게 물들여 감당키 어려운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다. 수십만 마리의 새와 물고기가 죽었고 손꼽히는 정유회사가 휘청였다.
상대적으로 피해규모가 적어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일반상선과 어선 사고도 끊일 줄을 모른다. 깊이 3~4000m에 달하는 짙푸른 바다 아래 얼마나 많은 배와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까. 이들을 기다리다 가슴이 무너진 사람은, 그들의 슬픔은 또 어찌나 깊을 것인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운 좋게도 우리가 비스케이만을 통과할 무렵은 날이 좋았다. 부드런 바람, 시원한 파도, 비스케이만에선 드문 날씨다. 이런 날은 촤아-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순항이다. 짙푸른 수면 위로 1m는 돼 보이는 물고기가 첨벙첨벙 뛰논다. 망원경 너머 햇살 받아 반짝이는 은빛비늘이 선명하다.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꼭 저만큼 커다란 다랑어가 보트 위로 뛰어올라 퍼덕거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수면 위를 비행하는 날치 떼와 거대한 형광 빛으로 일렁이는 바다, 그리고 고래. 그 모두를 두 눈으로 목격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바다는 넓었고 기대는 금세 현실이 됐다. 매 순간이 처음이었다. 폭 넓게 산다는 건 짜릿한 일이란 걸 새삼 확인했다.
비스케이만을 나서 영국해협(English Channel)에 들어섰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좁은 뱃길로 대서양과 북해를 잇는 길목이다. 영국해협 끝 가장 좁은 곳은 유명한 도버해협(Strait of Dover)으로, 프랑스 쪽에선 칼레해협이라 부른다. 도버에서 칼레까진 불과 35.4km, 날이 좋은 날이면 바다 건너 육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의 <덩케르크>도 이 바다를 배경으로 했다. 영화 초반, 길게 뻗은 모래해변이 연합군 병사들로 빽빽했다. 프랑스 해안에 줄지어 선 채 수송선만 기다리던 병사들에게 이 얕고 좁은 바다가 얼마나 막막하게 느껴졌을까.
지금은 영화에 등장하는 뒨케르케 해안부터 영국 본토까지 차로 건너갈 수 있는 세상이다. 1995년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이 뚫린 덕이다. 여름이면 양국을 오가는 요트가 끊이지 않고, 상선들은 좁은 수로를 바삐 지난다. 붉은 절벽 앞에 서서 인생무상을 이야기한 중국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이곳에 왔다면 어떤 시를 지었을까.
영국해협에 접어드니 오가는 배로 레이더가 가득 찼다. 길은 좁고 수심은 얕은데 배는 많이 다니니 교통이 복잡한 건 당연지사. 그래서 영국에선 길이 익숙하지 않은 배에 승선해 항해를 돕는 항해도선사(Deep sea pilot)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 배도 영국해협 초입에 위치한 브릭스햄(Brixham)에서 도선사를 태워 북해에서의 여정을 함께 했다.
북해 첫 항구는 플리싱언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물류전용 항만으로 우리는 싣고 온 차량 일부를 이곳에 내린다. 이곳에 오기 전 누군가 내게 말하길 바람 부는 네덜란드는 사랑이라 했다. 플리싱언에 닿기 훨씬 전부터 바람은 잦아들 줄 몰랐으니, 내게도 네덜란드는 사랑이었을까. 부두에 배를 묶자마자 가방 하나 챙겨 들고 길을 나섰다.
항구를 벗어나자 끝 모를 길이 누웠고 저 멀리 지평선이 횡으로 뻗었다. 한국에선 본 적 없는 풍경에 아이처럼 두둥실 기분이 떴다. 길 따라 늘어선 풍차가 천천히 팔을 돌리고, 바람결에 파도치는 들판 여기저기 소와 양이 풀을 뜯었다. 마을까지 걷는 내내 지겨운 줄 몰랐다.
네덜란드는 모든 것이 곧고 길다. 사람, 길, 나무, 모두가 그렇다.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내 안의 무엇도 조금쯤 곧고 길어진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길을 걷는 동안 어떻게 탔는지 신기한 가슴팍 높이 자전거를 타고 은발을 휘날리는 노인을 여럿 보았다.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힘껏 페달 밟는 뒷모습이 유럽의 저녁처럼 한창이었다. 오늘도 탑골공원엔 무료 지하철을 타고 소일거릴 찾아 나온 노인들이 가득일 텐데, 그들도 이국의 여행자에게 인사를 건넬까? 거센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탈까?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항구 인근 마을은 단장한 소녀처럼 고왔다. 붉은 벽돌과 흰 페인트, 사각의 유리창이 아이들 장난감처럼 앙증맞다. 중년 여자들이 마당에 나와 잡초를 뽑고 긴 막대로 차고에 페인트를 칠한다. 할로Halo 하고 인사하니 함박웃음이 돌아온다. 과연 바람 부는 네덜란드는 사랑인가 보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다. 굴뚝 위에 앉은 말이며 닭 모양 풍향계는 온 몸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가리켰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바다다.
2018. 5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