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지브롤터를 지나며

바다

by 김성호

6월 첫날, 크리스탈호는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에 들어섰다. 이로써 나는 세계 3대 해협이라 불리는 곳을 모두 지났다. 크리스탈호에 몸을 실은 지 6개월 만의 일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좁은 뱃길이다. 이베리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서북단의 모로코 사이에 난 수로로 좁은 곳은 폭이 12킬로미터(km) 정도에 불과하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대서양까지 나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로 지정학적 가치가 커 이곳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 남부에 영국령 지브롤터가, 모로코 북부엔 스페인령 세우타가 붙어 있는 기묘한 상황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역학관계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난 시간은 새벽 4시 무렵이었다. 당직자를 제외하곤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무슨 일인지 배 안 곳곳에 불이 들어왔다. 아마도 모두가 나와 같은 이유일 테다.

보름 전 우리는 브릭스햄에서 도선사를 태우며 그 편으로 심카드sim card를 구입했다. 심카드는 스마트폰에 끼우면 현지인처럼 해당 국가의 통신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유럽여행자들이 흔히 사용한다. 특히 영국 심카드는 서유럽 전역에서 이용이 가능해 영국 도선사 편에 북해산 털게와 함께 심카드를 주문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다 위에선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위성인터넷 설비를 갖춘 크리스탈호는 지나는 해역에 맞는 위성을 잡아 선원들에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간신히 메시지가 보내지는 정도라 답답하기 짝이 없다. 심카드가 있으면 선원들은 가족, 애인,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다. 그렇게 귀중한 데이터니 다 쓰지 못하고 유럽을 떠나게 된 선원들이 애가 타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깊은 새벽 선실마다 약속이나 한 듯 불이 들어온 건 이런 연유에서다. 육지와 가까운 바다 위에서 어떻게든 신호를 잡아보려는 선원들의 노력이 새하얀 불빛과 함께 선실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 새벽하늘은 선원들이 띄운 마음으로 온통 빽빽하다.


2018. 6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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