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함부르크에서

바다

by 김성호

배 일정과 개구리 뛰는 방향은 사전에 알 수 없다. 연수원 시절 교관이 우스갯소리로 해준 이야기인데 직접 배를 타보니 과연 옳다. 정해진 항구에 기항하는 정기선과 달리 그때그때 화물에 따라 항로가 바뀌는 부정기선은 일정이 변경되는 경우가 잦다. 부정기선에 속하는 자동차선도 배를 운용하는 회사의 영업결과에 따라 자주 일정이 뒤바뀐다. 브레머하펜을 출항한 우리 크리스탈호에도 그런 일이 생겼다. 예정됐던 사우스햄튼 대신 함부르크를 유럽 마지막 항구로 들르게 된 것이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제일가는 항구다. 9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1200년 넘게 번성한 유서 깊은 도시로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 큰 도시이기도 하다. 육로와 해로를 겸한 유리한 입지로 일찍부터 상업이 번성했으며 정유업과 해운업, 관광업,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엘베 강을 따라 60해리 정도 올라가면 강 양편에 터 잡은 거대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외항선은 수심이 깊어지는 만조 때를 기다려 출입하는데, 강 양편에 보이는 풍경이 더없이 멋스럽다. 그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그득한 유람선이 수시로 강을 오르내린다. 엘베 강 한 가운데, 유람선보다 훨씬 높은 시선으로 이 도시를 즐길 수 있다는 건 항해사의 특권이다. 함부르크의 상징이라는 오페라하우스 ‘엘프 필하모니’에선 사람들이 발코니로 몰려나와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는 그들을, 그들은 우리를 구경하는 기묘한 장면이 펼쳐진다.

강 한 편에선 프랑스·독일·영국이 합작해 세운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 공장에서 이제 막 태어난 비행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활주로를 내달린다. 얼마 후 지나친 수리조선소 플로팅도크에선 낡은 상선 수리가 한창이다. 강변 전쟁사박물관 앞엔 오래된 유보트가 강물에 몸을 반쯤 담궜다. 과거와 현재가,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이 도시는 평생 훌륭한 삶을 살아온 인간의 얼굴 위에 그 내면이 배어나오듯 한껏 아름답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배경삼아 함부르크 항에 들어서고 다시 나왔다.

배를 타기 전엔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가 있는 줄 상상하지 못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땅 위해 흠잡을 데 없이 멋진 도시를 다시 세워낸 독일인의 저력이 놀랍다. 그 어떤 악당이라도 감히 망치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할, 나는 그런 도시를 보았다. 5월의 함부르크를 오래 잊지 않을 것이다.


2018. 5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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