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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ep 10. 2021

아버지와 아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오마이뉴스 게재, <물에 잠긴 아버지>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83] <물에 잠긴 아버지>


"장마철의 곰팡이를 이기는 것은 가뭄이고, 가뭄을 이기는 것은 번개와 우레고, 번개와 우레를 이기는 것은 햇볕이고...... 그 햇볕을 이기는 것은 꽃그늘이고, 꽃그늘을 이기는 것은 밤이고, 밤을 이기는 것은 잠이고, 잠을 이기는 것은 아침이고, 아침을 이기는 것은 지심이고, 천심이라는 것이다."

순간 오현은 할아버지가 비 오는 날이면 하얀 종이에 치곤 한 난초 잎사귀를 떠올렸다. 비수처럼 생긴 잎사귀 끝이 허공을 가르고 나아가는 것이 지심이고 천심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니 애비 김동수는 지심 천심을 외면한 나쁜 놈이다. 너는 애비 없이 태어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놈이라고 생각해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너는 이제 파문의 지경에 이르게 된 우리 장흥 김문의 중시조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장흥 김씨는 너로부터 새로이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51, 52p 


한 아버지가 있다. 아들 여덟에 딸 셋, 모두 열한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른, 이제는 낡고 늙어버린 아버지 김오현이다. 그가 일곱째 아들 칠남과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그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던 걸음이다.


마흔 여섯의 나이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 땅을 등진 지 수십 년, 그 사이 고향은 참 많이도 변했다. 칠남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댐 아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자리에 서서 산과 산 사이 가득 들어찬 푸른 물을 한참 동안 말없이 내려다본다. 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깊고 푸른 물 속에 잠겨 형체를 알 수 없는 저 곳이 그와 그의 조상들이 나고 자랐던 고향이다.


<물에 잠긴 아버지>는 소설가 한승원의 작품이다. 쉰둘의 나이에 발표한 단편 희곡 <아버지>를 수도 없이 다듬어 장편소설로 고쳤다. 언제나처럼 작가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엔 그의 삶이 한가득 녹아 있다. 그의 어머니는 열한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 그 중 둘째로 태어난 저자는 소설 속 칠남이 그렇듯 식물성 아나키스트로 한평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어느 자리에서 저자는 세상을 떠난 친구의 이야기가 작품에 반영됐다고 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맞아 죽은 후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친구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슬펐다는 것이다. 그는 답답함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곰방대로 화로를 '댕댕' 하고 내려치던, 아내와 자식들과 며느리들을 잃고 어린 손자와 단 둘이 살아남은 소설 속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친구의 가슴 아픈 사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 물에 잠긴 아버지 책 표지ⓒ 문학동네


<물에 잠긴 아버지>는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동시에 아버지 스스로가 가슴 깊이 가라앉은 슬픔과 회한을 겉으로 꺼내 드러내는 이야기다. 더불어 아들을 알지 못했던 아버지가 그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와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아버지 본인과 그의 아내, 아들 칠남조차 평생 동안 마주한 적 없었던 아버지의 솔직한 삶이 지면 위에 생생히 펼쳐지는 동안 독자들은 칠남의 곁에서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버지에게 고향은 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와 형제들이 한을 품고 잠든 땅이다. 아버지의 고향, 장흥군 유치면은 한국전쟁 이후 북으로 올라가지 못한 빨치산과 이를 진압하려는 군경 간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전개된 전장이었다고 했다.


그 곳에서 칠남의 할아버지는 빨치산 대원을 이끄는 우두머리였다. 최후의 전투에서 빨치산이 패배하자 할아버지는 자결했고 남은 가족들도 원한을 품은 이들에게 참담하게 살해당했다. 가족 가운데 살아남은 건 둘 뿐이었다. 칠남의 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그들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삶은 가문을 재건하는 데 온전히 바쳐졌다. 한 자식의 잘못으로 아내와 다른 자식들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통곡스러웠지만 손자 하나가 남아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최씨 집안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남은 손자(아버지) 하나만큼은 살려달라고 한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에게 남은 아버지는 꺼져가는 가문을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때로 가슴 속의 울분이 올라오면 그것이 다시 저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곰방대로 화로를 두들겼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소리가 슬펐고 두려웠다고 떠올렸다.


아버지에게 삶은 증조할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않고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고 유언을 받들어 열이 넘는 자식을 낳았다. 증조할아버지가 원했던 것처럼 가장 똑똑한 장남 일남이를 판·검사로 만들려 노력했고 그가 기대에 부응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증조할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삶이 될 수 없고 아들들의 삶도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최선은 증조할아버지의 유언에 부합하지 못했고 이내 그 어긋남이 몇 가지 불운과 맞물려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소설은 한국전쟁이란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한 집안 사람들이 비틀린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회상의 형식으로 조명한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아들과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가 함께 수장된 고향을 찾아 옛 기억을 들추는 게 소설의 주요한 줄거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가장 암울하고 치욕스런 과거까지를 낱낱이 털어놓고 아들은 그로부터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잠긴 건 고향땅인데 왜 제목은 <물에 잠긴 아버지>일까?


'도시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락이 두 개였다. 하나는 점심때 먹을 것, 다른 하나는 저녁때 먹을 것이었다. 도시락 속에는 김밥과 김치와 함께 아내의 아기자기한 손맛이 담겨 있고,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과 주부습진으로 물러진 피부도 담겨 있고, 열한 명의 아기를 키워낸 젖무덤과 물큰한 유향도 담겨 있었다.' - 254p


제목인 <물에 잠긴 아버지>는 소설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물에 잠긴 건 고향마을인데 어째서 작가는 물에 잠긴 아버지라 표현한 것일까?


책장을 덮고 찬찬히 생각해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삶은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있는 곳에 있었던 게 아니라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형제들이 묻힌 고향땅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유명을 달리한 가족들을 위해 제 삶을 바쳤기에, 또 그것이 옳다고 믿고 살았기에 아버지의 삶은 온전히 그만의 것으로 분리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역사가 남긴 상처를 자신의 온몸을 던져 메우고자 했던 착하고 순박한 가장의 싸움은 그래서 무참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의 끝에서 이해와 화해, 성장과 회복의 전기를 마련한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유지에 매여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대신 진정한 자신을 되찾게 된다. 장마철의 곰팡이를 이기는 건 가뭄이고 다시 그를 이기는 건 번개와 우레며, 이 모두를 이기는 건 지심이고 천심이라는 증조할아버지의 말처럼 평생을 순리에 따라 살아온 그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 삶을 찾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남긴 상처, 그로부터 갈라져버린 세대가 순리에 따라 인고의 삶을 살아간 한 인간의 노력으로 마침내 화해하게 되는 순간은 곧 이 소설의 결말이다. 세대와 세대 간의 화해, 그에 앞선 이해와 반성을 몇 세대에 걸친 장대한 이야기 속에서 접하는 건 너무도 감동적인 일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오현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그날밤 그는 아파트의 경비원 노릇을 계속할 것인가, 돈을 두 배 가까이 준다는 국제전자의 창고 관리인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남자의 아버지 박장수가 토벌대 대장이었다는 것, 빨치산 대장인 그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노인과 나는 슬픈 악연 아닌가. 

그렇지만 육십 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이제, 많이 달라져버린 세상 속에서 당시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일어난 비극을 괘념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현은 할아버지가 하던 말을 떠올렸다. "장마철의 곰팡이를 이기는 것은 가뭄이고, 가뭄을 이기는 것은 번개와 우레고, 번개와 우레를 이기는 것은 햇볕이고, 그 햇볕을 이기는 것은 꽃그늘이고, 꽃그늘을 이기는 것은 밤이고, 밤을 이기는 것은 잠이고, 잠을 이기는 것은 아침이고, 아침을 이기는 것은 지심이고, 천심이라는 것이다." - 269p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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