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곳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해본다. 2년, 어쩌면 그보다 길어질 시간. 그동안 만날 수 있었을 귀한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내 것만큼 귀한 시간이며,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사람과 그와 보낼 수 있었을 정다운 한 때를 생각한다. 제법 잘 맞는 일터와 나쁘지 않은 수입, 꾸준히 불어나던 기고처와 기고료, 공들여 가꿔온 팟캐스트와 모임이 내겐 있었다.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순간, 주인의 주머니사정에 비례해 몸집을 불리던 멋진 책장은 기쁨이며 자랑이었다. 마음을 나눌 벗이 있고, 그들과 함께 찾는 편안한 공간들을 나는 가졌었다. 이 모든 것과 함께한 내 평범한 나날들을 나는 어떻게 던져버릴 수 있었던가.
잃어버린 것보다 얻은 것이, 잃어버릴 것보다 앞으로 얻을 것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거센 바람에 떠밀려 천천히 한 편으로 기울었다가, 내려간 꼭 그만큼 다시 치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배 안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후회와 걱정들을 썼다가 지웠다가 뱉었다가 삼켰다가를 거듭하였나.
끊임없이 기우뚱대며 내가 잃은 것과 앞으로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였다. 삶의 규칙은 간단해서 일단 선택하면 돌아보지 않는 것이라 배웠건만, 아예 뒤돌아서 떠나온 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선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삐그덕-삐그덕- 소리를 내며, 불안하게 놓인 물건들을 잡아당겼다가, 이내 밀쳐내며, 신음하며, 몸을 뒤틀며, 비명을 쏟아내며,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는 이 방 안에서 나는 내가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신이 나를 이곳에 가두고 나의 나태와 게으름을 질책하며 너 같은 놈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노라고 무섭게 소리치는 꿈을 꾸었다. 눈을 번쩍 뜨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고, 그것이 가리키는 것을 믿지 못하여 일어나 휴대폰을 찾고, 그러다 실망하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억지로 눈을 감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가 얻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마음을 다잡곤 하였는데, 얻은 것은 한없이 가볍고 보잘 것 없이 보였으며 미래는 막막하고 오늘은 괴로워서 잠은 오지 않았고 이대로 모두 다 포기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스물넷에도 포기하였는데 서른넷에 다시 무엇을 포기하면 마흔넷에는 더욱 절망적이지 않을까 하여 애써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켜고 베토벤과 비틀즈와 방탄소년단 따위가 뒤죽박죽 섞인 B폴더의 음악을 랜덤재생시켜놓고는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연필로 눌러 적어보자고 다짐하였다.
전 세계 모든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3급 항해사 면장을 곧 얻을 테고, 썩 괜찮은 글이 될 생각과 글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수첩을 가졌고, 이런 저런 생각을 끄적인 몇 편의 글이 있고, 여기저기 상륙 나가 얻어온 추억이 있고,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문밖에서 슼- 하니 밀려들어온 쪽지 한 장. 그 위에 담겨 전해진 어떤 안부. 아, 그렇구나. 이곳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었을, 나는 사귈 만한 사람들을 사귀었구나!
2018.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