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선장은 늘 나를 특별히 취급했지만 그것이 내 특수한 이력 때문임을 모두가 알았다. 술이 취하지 않았을 땐 부담스러울 만큼 치켜세워주다가도 술이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그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취해 있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 만큼 많았는데 일단 취했다 하면 내가 걸어왔고 걸어가길 원하는 길, 이를테면 명문대와 영화판, 기자, 작가를 무시했고 아예 내 입으로 스스로 무시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400년 전 갈릴레오가 우주의 법칙마저 부인한 판에 이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저 스스로 배를 타는 상황이 불만스럽기 때문인지, 그는 내게 배를 타라고 했다가, 타지 말라고 했다가, 저기 해양심판원 심판관이나 해운전문변호사가 되라고 했다가, 다시 선장이 되라고 했다가, 빨리 배를 내려서 어울리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했다가, 이따위 이야기들로 몇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럴 때면 난 오로지 이 자리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일념으로 그가 원할 법한 대답만을 반복하였다.
언젠가 한 번은 그가 도대체 왜 배를 타느냐고 다시 또 이유를 캐어묻기에 이제껏 오십 번도 넘게 반복한 그럴듯한 모범답안 대신 진짜 이유를 말해주었다. 뱃사람의 눈으로 바다를 보러 왔습니다, 그래서 그 눈으로 본 걸 쓰려 합니다. 그랬더니 그가 불쑥 화를 내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네 말엔 논리가 하나도 없다며 한참을 설교하는 것이었다. 하도 짜증이 나서, 대학은 어찌어찌 들어갔는데 고시를 몇 년 해도 계속 떨어지고, 취업을 하려 해도 뽑아주는 회사가 없어 백수로 지내왔고, 그러다 운 좋게 작은 신문사에 들어갔는데 월급은 코딱지만큼주고 일을 죽어라 시켜서 박차고 나왔고, 유망한 직종이라는 항해사가 될 수 있는 길을 듣고 온 거라 하였더니 그제야 그랬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나도 그쯤에서 멈추었어야 했는데 술도 됐겠다, 하나도 사실이 아닌 말은 믿으면서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면 믿지 않으니 대체 이런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는 당혹하며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잘 해주었는데 너는 내게 버릇없고 건방지다며 잔뜩 골이 나서는 이제껏 너도 좋아 온 술자리가 아니더냐 하기에 누가 이런 자리를 좋아하겠습니까 하고 답하였다. 그런데 웬걸, 한참 말이 없더니 앞으로 원치 않으면 술자리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양할 내가 아니다. 그날로 술자리가 열렸다 하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가지 않았고 그쪽에서도 부르지 않으니 모든 면에서 삶의 질이 이전과 비할 바 없이 나아졌다. 이후로 심심하면 배는 네 놀이터가 아니니 돌아가라거나 사회성 떨어지는 부적응자라며 비아냥대거나 작은 실수를 부풀려 큰 사고를 친 마냥 비난해대는 경우가 있었으나 어차피 사실도 아닌데다 드높으신 선장님 기분을 거스른 대가려니 하고 참아내었다.
그렇게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 하루 몇 시간이나마 글도 쓰고 가끔은 영화도 보고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승선 다섯 달 만에 얻는 해방이었다.
2018.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