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훌륭한 건 언제나 귀했다. 나만큼 절실히 훌륭함을 찾아 헤맨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인데, 그런 나조차 진정으로 훌륭한 것을 그리 많이 만나보지 못했을 정도. 이제껏 겪은 몇 가지 훌륭함은 특정한 삶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으로, 어느날 문득 그 중 하나가 내 앞에 제게 이르는 길을 열어보였을 때 난 바로 그를 향해 돌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영부영 살다간 평생 한 가지 훌륭함도 만져보지 못할테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나보다 먼저 바다에서 훌륭함을 건져 올린 이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발자국을 따르면 될 터였다. 뱃사람의 눈으로 바다를 보고, 본 것을 표현할 것. 내가 알아야 할 건 그게 전부라고 믿었다.
뱃사람의 눈으로 바다를 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뱃사람만큼 알아야 하고 뱃사람처럼 살아야 하며 스스로를 뱃사람이라고 믿어야 했다. 뱃사람 사이에 섞여들어야 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며 스스로 그들 가운데 한 명이길 원해야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자주 그것이 싫었다.
가장 큰 고비는 술자리였다. 한 번 마셨다 하면 아홉 시간이 기본인 술자리가 이틀 걸러 하루씩 이어졌다. 다함께 하는 술자리가 끝나면 선장 방으로 따로 불려가는 날이 잦았다. 둘 또는 셋, 가끔은 넷이서 맥주 몇 박스와 5리터들이 싸구려 와인 팩을 모두 비워내고서도 창고를 열어 술을 더 꺼내오곤 하였다.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한 술자리는 어김없이 새벽이 깊어서야 끝을 보았다. 나도 다른 이도 자주 토했고 그럴 때면 선장은 크게 웃었다.
길고 긴 술자리마다 그가 하는 소리는 같았다. 조언을 가장한 자랑과 무시, 비난 따위의 것들. 그마저도 레퍼토리가 빤하여 한 달 쯤 지나자 새로 듣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였다. 보고 있자면 어떻게 매번 같은 이야기를 저리 열정적으로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고약한 술버릇이었다. 술에 취해 발음이 꼬일 때쯤이면 꼭 누구 하나를 잡아 비난하고 욕하고 결국엔 눈물을 쏙 뽑아내고서야 멈추는 못된 버릇이 그에겐 있었다. 만취한 채로 항법은 물론이요, 선박조종이며 화물관리, 가끔은 기관에 대한 지식으로 상대를 몰아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난 취한 채로 책과 규정집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기 바빴다. 상황은 어느 한 명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존재가 되고 나서야 끝났다. 모두가 그날의 타깃이 되길 원치 않았으므로, 일단 그의 말이 어눌해지면 살살 기기 바빴다. 가끔 제 맘처럼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 날에는 전 선원을 불러내 똥개훈련을 시키거나 모두가 집합한 자리에서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곤 하였다. 배에선 선장이 왕이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은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에 맞는 일을 하며, 존중받으며, 커리어를 쌓으며 돈을 버는 길을 마다하고 무얼 위해 이런 꼴을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차라리 이제껏 번 돈으로 원하는 항로를 가는 크루즈를 타는 게 어떨까도 싶었지만, 내가 원한 건 항해사로 바다에 나가는 것이지 관광객으로 바다를 보는 건 아니었으므로 매일 하루씩 견뎌내었다. 어떤 선장을 만나더라도 추천서를 받고 내리자던 처음의 결심은 이런 경우까지를 포함한 게 아니었던가.
2018.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