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그러면 된다

바다

by 김성호

문제는 다른 사관들이었다. 내가 술자리에 가지 않는 대신 누군가 내 자리를 채워야 했으므로,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저들은 억지로 불려가 비위를 맞추는데 고작 실항사 따위가 방에서 쉬고 있으니 당연한 불만이었을지 모르겠다.

술자리에 불참한지 두 달 째인가 석 달 째인가, 당직을 함께 서는 이항사 권유로 따라간 술자리에서 일항기사가 작정하고 술을 강권하여 필름이 끊어지도록 마신 날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자기들도 원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닌데 어디 실항사 따위가 마음대로 불참을 하느냐, 이제껏 이렇게 놀고먹는 실항사를 본 일이 없다, 다른 실항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긴 하느냐, 나이 대접을 해줬더니 아예 실항사인 걸 잊은 게 아니냐, 이제껏 여기서 라면은 몇개나 끓여봤느냐, 그렇게 웃지도 않고 있으면 술맛이 떨어진다, 사회생활을 그렇게 하면 어디서나 욕을 먹는다 따위의 비난을 그들 안에 쌓인 화와 함께 쏟아내었다. 저들은 조언이라지만 군 생활 2년에, 셀 수 없이 많은 아르바이트에, 결코 만만치 않은 몇 개의 업종을 썩 괜찮게 겪어낸 내겐 조금도 와닿지 않는 말들뿐. 진급에 목이 매여 부당한 지시에도 쩔쩔매고 적극적인 동조, 나아가 아부까지 해대는 걸 언제부터 사회생활이라 불렀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실항사, 그것도 결함 많은 연수원 출신 실항사다. 이력만 보아도 얌전히 배를 탈 것 같진 않았는지, 누구도 데려가려 하질 않아 이 배 하나 타는데도 곡절이 많았다. 승선 전에는 인사담당자에게 문제를 만들지 말란 당부까지 따로 들었을 정도. 그런 내가 이 대단하신 분들 앞에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고, 비둘기떼 사이에선 팔십일이라도 해야 한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지난 몇 달의 태도를 사죄하고 장단 맞춰가며 농담을 한다. 시덥지 않은 얘기에도 자리가 떠나가라 웃고 온 몸으로 공손함을 표현한다. 그러니 아까하고 지금하고 얼마나 다르냐 이제야 좀 실항사같네 하며 좋단다. 너희들의 사회생활은 비참하고 외롭구나.

지원한 모든 선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겨우 얻은 마지막 면접자리였다. 나는 못미더워하는 면접관에게 배만 태워주면 어떤 대가든 치르겠다고 절대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노라고 제발 한 번만 믿어달라고 호소했었다. 비참하고 외로울 때면 나는 그날의 감정과 각오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고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배에서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배를 타는 대가라면 오히려 아주 싼 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세상 어디서나 훌륭함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는 내가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가끔은 비참하고 외롭겠지만 외로움과 비참함에도 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원하는 걸 구해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러면 된다.


2018. 9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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