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누가 과연 악당인가

바다

by 김성호

아덴만에 돌입하자 한국 해군에서 수시로 연락을 취해왔다.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므로 배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조치다.

물론 크리스탈 호와 같은 자동차운반선은 해수면에서 상갑판까지의 높이가 30m에 선속도 빠른 편이라 해적이 침입하긴 어렵다. 하지만 상대는 악명 높은 해적이다. 더욱이 소말리아 일대에서 해적이 다시 출몰하는 터라 방심할 수는 없다.

홍해에 진입하기 전부터 부원들은 해적이 오를 수 있는 모든 통로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마네킹까지 제작해 세웠는데 수십 미터만 떨어져서 보면 사람인 줄 알 만큼 정교하게 만들었다. 일항사는 시타델의 통신장비와 비상식량 점검도 마쳤다. 당직사관까지 수시로 윙브릿지에 나가 주변에 접근하는 소형선이 있는지를 확인하니, 내가 해적이라도 이 배는 노리지 않겠구나 싶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모든 배가 우리 같지는 않다. 화물을 가득 실은 유조선이나 벌크선은 수면으로부터의 높이가 높아봐야 2-3미터에 불과하다. 이런 선종은 선속까지 느려서 해적이 밤중에 스피드보트로 접근해 사다리를 걸면 속수무책이다. 본래 아덴만과 같은 위험지역을 항해할 땐 총기를 소지한 보안요원을 태우는 게 권장됐지만 해적의 위협이 잦아든 지난 몇 년 동안엔 대부분의 선사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

내가 승선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계 곳곳에서 해적에게 공격당한 배의 소식이 위성 통신장비를 통해 전해졌다. 나이지리아 앞바다와 말라카 해협 인근, 아라비아 해와 소말리아 근방까지 위치도 다양했다. 대부분은 해적이 배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고 방어에 성공한 사례였으나, 해적이 배에 승선해 전 선원이 시타델로 대피했다거나 하는 긴박한 상황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엔 기니만에서 스위스 상선 글라루스 호에 해적이 올라와 선원 12명을 납치해가는 일이 있었다. 그 몇 달 전에도 같은 해역을 항해하던 벌크선에 해적이 침입해 선원들이 모두 시타델로 대피해야 했다. 해적이 총격까지 가했으나 다행히 사상자가 없었다는 내용도 함께 전해졌다.

한국 선원들도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지난 3월 말 원양어선이 납치돼 한국인 선원 세 명이 한 달 만에 풀려났고, 그 몇 달 전까지도 어선과 상선이 공격받은 사례가 여럿이었다.

해적들이 이렇게까지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니까 하는 거다. 나이지리아와 소말리아 경제가 파국인 상황에서 선원 한 명 몸값으로 수 만 달러에서 수십 만 달러까지 오가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을 테다. 주류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가정하는데, 주류 경제학이 소말리아나 나이지리아 해적을 인간취급 안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정예 해군력을 파견해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까지 해적질을 할 만한 매력이 있다는 얘기인 것이지.

지금이야 조기교육 받은 유망주가 많이들 나왔다지만 소말리아 해적 1세대는 본래 어부였다고 들었다.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기술과 장비가 좋은 아시아 원양어선이 제 나라 앞바다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싹쓸이해가는 걸 손가락 빨며 지켜보던 구식어부가 해적의 전직인 것이다.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어업권을 제 손으로 지키겠다며 조직적으로 무장한 걸 시작으로, 납치한 선원을 풀어주며 몸값을 받는 걸 사업화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생각해보면 극심한 가난 가운데 목숨을 걸고 하는 게 해적질이다. 누군들 좋아서 목숨 걸고 바다에 나가겠나. 그것도 전속으로 달리는 배를 스피드보트로 쫓아가서 사다리를 걸고 올라야 한다. 재수 없게 접근하는 게 발각이라도 됐다간 압력을 끝까지 올린 소방호스로 물줄기를 맞을 수 있다. 얼마나 아픈지는 맞아본 사람만 안다. 까딱 잘못했다간 유럽과 아시아 전함을 AK소총으로 상대할 수도. 극한직업도 이런 극한직업이 없다.

한때 해적의 본거지로 유명했던 소코트라 섬을 지나며 누가 과연 악당인가를 생각해봤다. 너의 가난이 나의 위험이 되는 순간, 나는 대체 어디에 화를 내야 하는 건지도.

그렇게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적어도 김수영과 조커의 팬이라면 해적한테 분개해선 안 되는 거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는 화낼만한 상대가 충분하고도 넘치니까. 아무리 오버타임을 하게 되더라도 말이지.


2018. 10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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