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홍해에 들어설 무렵 해군으로부터 위성전화 한 통을 받았다. 최근 수차례에 걸쳐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 영토를 폭격했고 우리가 홍해와 아덴만을 통과할 즈음에 다시 공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하란 내용이었다. 며칠 뒤엔 회사에서도 비슷한 공문이 왔는데 해군의 경고와 대동소이한 것이었다.
이를 보고받은 선장은 도대체 주의해 항해하란 게 무슨 뜻이냐며 해군과 본사의 일처리를 한껏 비웃었다. 우리가 방공포를 가진 것도 아니고 무슨 수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피해가냐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죽는 것과 모르고 죽는 건 아무래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죽을 땐 죽더라도 누가 죽였는지는 알고 죽어야 저승에 가서 하소연이라도 할텐데 말이다. 기회가 되면 해코지도 좀 하고. 그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동방예의지국 시민의 자세지. 헌법상 알권리도 있고 말이야. 역시 난 배운남자!
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나라다.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이 500여 명이나 되는 만큼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유엔 난민협약에 서명했고 난민법까지 따로 제정해두고 있는 한국입장에선 이들을 포용하는 게 의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내여론은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다.
예멘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잠시 살펴보자. 예멘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시아파 후티반군과 이를 진압하려는 정부군이 십수 년 째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고 있는 상태다. 반군은 이란에게, 정부군은 사우디를 앞세운 연합군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어 단순한 내전을 넘어선 대리전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와 이란, 미국과 영국 등이 예멘 사태에 개입하는 건 경제적 문제, 그러니까 석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의 석유수출은 걸프만과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어지는 사우디 동부 항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곳이 산유국에서 난 기름이 바다로 나가는 현존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초대형 원유선인 VLCC가 통항할 수 있는 수심이 나오는 좁은 통로가 하필이면 이란 영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를 이용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국제사회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짓거리를 종종 벌이곤 했다. 당연히 지금의 상태가 만족스러웠겠지.
반면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서구 강대국과 이들과 돈독한 관계인 사우디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왔다. 그중 사우디 남부에 위치한 예멘에 파이프라인을 깔아서 아덴만까지 기름을 내보내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란이 이를 반길 리 없었다. 이란은 저들의 숙적 미국의 특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반격에 나섰다. 예멘의 정치적 상황을 이용한 것이다. 이란은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그 결과 내전에 불이 붙었다. 사우디도 지지 않았다. 반군이 장악한 곳이면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고 때려부쉈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강대국의 묵인 아래 경제적 봉쇄까지 이뤄졌으니 민간인의 삶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카에다까지 침투해 근래에는 나라가 아주 아작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들었다. 중동 항구에서 전해들은 소문의 절반만 사실이더라도 예멘은 고통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이란 본디 제 태어난 고향에 정을 붙이고 살아가려 하는 법이다. 잠시잠깐 집 떠나 여행만 다녀와도 피로를 느끼는데, 난민이 되어 낯선 곳을 떠도는 고통을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은 원유 11억2000만 배럴을 수입했다. 드럼통 하나를 대략 1배럴로 치니, 드럼통 11억2000만개에 원유를 가득 채워 들여왔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중동산 원유는 얼마나 될까? 80퍼센트가 넘어간다.
깊은 밤 홍해를 덮은 선명한 은하수 아래서 예멘 난민의 고통에 나의 지분이 얼마쯤 되는지를 가만히 짚어보았다. 남두육성이 선수에 걸릴 때쯤 결론에 도달했는데 결과만 알려주면 다음과 같다.
오늘밤 선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저승에 끌려가도 나는 저승사자를 붙잡고 억울하다고 질질 짜지는 않을 것이다. 억울해하기엔 미안한 게 좀 있더라.
그럼 피이쓰!
2018. 10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