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하늘을 절반으로 가르는 긴 별똥별을 보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막 출항해 지중해로 나선 때였다. 번잡하고 피로했던 만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그 지긋지긋한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세상은 작은 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까만 밤에 덮였다.
살얼음판 같은 선장 표정을 살펴가면서 날선 출항작업을 하는 건 몹시 짜증나는 일이었기에 남지중해의 덥고 습한 바람도 반갑게만 느껴졌다. 선교에서 선장이 떠나자마자 나는 윙브릿지로 나가 철봉에 매달렸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마주하고 턱걸이를 하다보면 세상에 온통 나와 하늘, 그리고 바다뿐인 것만 같아서 나는 철봉에 매달리는 걸 좋아했다.
그때였다. 난 이제껏 그렇게 긴 별똥별을 본 일이 없었다. 밤하늘 셀 수 없이 많은 별자리 사이로 주우욱- 누런 선을 굵게 그으며 무언가가 스러졌다. 그저 한 순간이었다. 난 철봉에 턱을 걸고서 대기와 만나 스러지는 우주물체의 최후를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하 시발” 한 마디를 내뱉고 추락하듯 갑판 위로 떨어졌다. 작은 파이프 양편을 줄로 잡아맨 조악한 철봉에 매달려, 마침내 참고 참았던 숨을 탁-하고 터뜨리며 한다는 소리가 고작 “하 시발”이라니.
고등학생 때였나. 밤새 수백의 별똥별이 떨어진다기에 깊은 새벽 나가 누운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도 나는 그랬었다. 세상에 아름답다고 이름붙일 수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순간 가운데 하나를 목격하고서, 고작!
처음 고래를 본 날이었다. 근방 오십마일에 배 한 척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망망대해 그 푸른 바다 밑에서, 크고 둥근 것이 갑자기 솟아 올라 흰 물기둥을 세차게 뿜어낸 일이 있었다. 어미와 자식, 크고 작은 두 마리 둥근 고래는 박동하며 나아가는 배 근처를 천천히 또 둥글게 헤엄쳤다. 그것들이 내뿜는 물줄기가 작은 파도와 구분되지 않을 만큼 멀어질 때까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망원경으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자 “하 시발”하는 탄식을 비명처럼 내뱉고 말았다.
다음엔 꼭 모습을 찍어야지 결심하고 당직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 올라가곤 했으나, 고래를 두 번째, 다시 세 번째 만났을 때에도 나는 그저 “하 시발”하는 말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인도양 어딘가에서 족히 오십 마리는 넘는 돌고래 떼가 선수를 횡단한 일이 있었다. 전속으로 항진하는 대형상선 앞을 가로지르면 그날은 운수가 좋아진다고 믿는 어선처럼, 수십의 돌고래가 저 멀리서부터 우리 항로를 가로지르려 하고 있었다. 드넓은 들판, 그러니까 미국 텍사스나 아프리카 사파리 같은 곳에서 대지를 가로지르는 야생마 떼를 본다면 이러할까. 그 힘차고 역동적인 행렬이 우리 배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마침내는 절반가량이 선수를 횡단하고 나머지 절반은 배 아래를 지나 반대편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도 머리를 꺾지 않은 몇 분 간의 경주 동안에 나는 고작 그들을 멍하니 바라본 것 말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그들이 배 왼편에 모여들어 첨벙이며 뛰노는 걸 지켜보면서, 모든 상황이 끝난 걸 아쉬워하며, 아니 아쉬움이란 감정조차 일지 않아서, 나는 또 “하 시발”이라고 목적지 없는 욕설을 흘리고야 말았다. 곁에서 한국말을 알아듣는 타수가 흠칫 놀라 나를 바라보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라고 좀 더 품격 있는 말을 하고 싶지 않겠나. 생애 몇 번 마주하지 못할 경이로운 순간을 앞에 두고서도, 나는 고작 “하 시발”하는 말밖에는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마주해서 내놓는 표현으로 인간의 격이 결정된다면 나란 인간은 대체 얼마만큼 형편없는 것인지.
하, 시발.
2018. 11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