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들의 합이라 했다. 지난 육개월 간 글을 쓰지 않았으니 나는 위대함에 한 걸음도 다가서지 않은 것이다.
공들인 작품을 한 순간에 날린 건 슬픈 일이지만 새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핑계일 뿐이다.
앞에 놓인 길은 둘이다. 포기하거나, 나아가거나. 사내가 걸을 길은 하나 뿐이다.
지난 육개월은 매일이 고통이었다. 모든 걸 잃은 그 날 이후, 한 문장 한 문단 나아가기가 힘에 부쳤다. 하루아침에 가장 즐거웠던 일이 두려움이 되고 말았다.
조금 쉬다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백지를 앞에 두고 좌절하는 게 일상이 됐다. 열다섯 이후로 처음 겪는 일이다. 절로 앞이 깜깜해졌다.
얼마 전 다시 기고를 시작했다. 글 보내달란 잡지 하나 없는 신세가 되었으나, 오마이뉴스가 남아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연재하던 코너를 이어쓸 수 있고 그럭저럭 원고료도 들어온다. 영화평인 '김성호의 씨네만세'가 240편,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는 131편을 헤아린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도 된다. 부끄러운 글이 많다지만 뿌듯한 놈도 적지는 않다. 이쯤되면 자부심을 품어도 괜찮을 것이다.
어디 시와 소설만 글인가. 기고부터 하다 보면 원하는 글에 닿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아니래도 어쩌랴. 손가락 빨며 징징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2018. 12. 26. 수요일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