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즐거운 크리스마스, 행복한 뉴이어

일기

by 김성호

이대로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갈까 나 아는 이들 곁에서 몸 부비며 살아볼까 날 밝으면 괜찮은 것 같다가도 밤만 되면 슬프고 괴로워서 저 멀리 도망치면 속이 좀 편할까 어떨까 허한 속에 술을 들이부으면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다가도 술이 깨면 현실은 삭막하고 인생은 막막하여 무얼 어찌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럴 때면 산에 올라 저 멀리 어디쯤 바라봐도 좋으련만 땅에 발 딛고 보는 무엇을 인도양 한 복판에 떨어지던 붉음과 견줄 수 있을까 그 타는 붉음을 닮은 누군가와 그 곁에 있던 내 모습을 나는 여지껏 사랑하여 이렇게 달아나고만 달아나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평생을 자랑처럼 살던 내가 어찌 이리도 조그마한지 스스로도 놀라 자빠질 지경인데 이대로 자빠지면 일어서지도 못할까 저어하여 어디 함부로 자빠질 수나 있나 목 긴 신발 신고 생각 높은 글 읽어봐야 죄다 헛일이 아니더냐 하루빨리 저 먼 바다 뜨건 태양 아래 오늘이나 내일이나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이나 아무런 구분 없는 세월을 무심히 죽여야지 어서 꺼지거라 이천십팔년아 비좁은 도시 위 먼지같은 인간들아 눈 먼 불빛만 속모르고 밝은 밤아 차마 그래도 너에게는 너에게만은 즐거운 크리스마스 행복한 뉴이어여라 빌어보는 한심한 놈도 죄다 썩 같이 꺼져버려라.

2018. 12. 25. 화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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