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우울과 슬픔, 상실과 무력감은 이제껏 내 삶에서 만나본 적 없는 종류의 감정이어서 나는 어떻게 그것들을 다뤄야 할 지 알지 못했다. 가만히 있자니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아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도대체 뭐를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더는 뛸 수 없을 때까지 뛰어도 보고 한강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아도 봤지만, 언제고 걸음을 멈추면 처음보다 큰 무력감을 마주하곤 하였다. 버려진 마음이 홀로 폐허를 뒹구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고통은 선명해졌다. 손을 내밀어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지만 후회는 깊고 상실은 커서 무엇에도 닿지 못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길고 질었다.
그러다 생각한 게 등산모임이었다. 혼자일 때면 한없이 추락하고 가까운 이들과 함께면 불편하거나 불편을 주어야 했는데 낯선 사람들 사이라면 그럴 걱정이 없었으니까. 가라앉을 틈 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계속 무언가에 집중해서 걷고 또 걸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몇개의 모임에 가입해 매일 산행에 나섰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 같은 곳들. 형편없이 떨어진 체력이나마 남으면 모임이 끝나고 가까운 산을 다시 올랐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산을 오르다 보면 무너진 삶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 쉽게 지치는 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백지를 앞에 두고 실망하지 않아도, 닿지 않는 누구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다시 바다에 나가기 전까진 이렇게 살아야지 싶었다.
2018. 12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