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2018년의 마지막 해가 떨어질 때까지도 선사는 연수원생을 대상으로 신규채용을 진행하지 않았다. 처음 한 달은 해대 출신 삼항사 채용으로, 다음 한 달은 연말이라 바쁘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마다 도대체 일이 얼마나 줄어들면 연수원 출신 채용을 시작할지 묻고 싶었으나, 그저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따위의 말로 통화를 그만두었다.
연락이 온 건 배에서 내린 지 두 달 가까이 지나서였다. 지마린에서 실습한 연수원생을 몽땅 초대한 카톡방에서 인사담당자는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기별했다. 이제나저제나 소식을 기다리던 모두가 그길로 이력서를 보냈지만 선사에선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보름 넘는 시간이 다시 또 흘렀다.
나는 속이 뒤집혔다. 세상 어느 회사가 같은 직급 신규채용을 출신별로 하는지를, 열 달이나 저의 이익에 봉사한 이를 이토록 무성의하게 취급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알았다 해도 화가 치미는 걸 막지는 못했을성싶지만.
배를 타고픈 건 사실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가고 싶은 곳, 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원했다. 기왕 항해사가 되었으니 제대로 뱃일을 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내가 실습한 선사의 사관으로 배를 타고 싶었을 뿐이다. 노력을 인정받고 책임을 부여받아 먼 바다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싶었다. 다른 어디도 아닌, 내가 글을 잃어버린 그곳에서 나의 글을 되찾고도 싶었다. 적도의 태양 아래 질퍽이는 마음을 바짝 말려버리고 강한 내가 되어 돌아오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원하는 만큼 그 무엇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뎌야 하다니, 괴로운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다는 내 있을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 제 발로 이곳에 들어와 많은 것을, 정말 많은 것을 잃어버려가면서 얻은 자리가 고작 이런 것이라는 걸 납득하기가 어렵다. 이런 취급을 참아가면서까지, 다시 글이라는 걸 쓸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배에 오르는 게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일 년 전과 다르다. 그때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도 배를 탈 이유가 있었다. 바다에 내 글과 미래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바다에 무엇이 있는가. 그저 미련일까, 도피일까, 어떤 가능성일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육상에서 직업을 구할까, 조금 더 기다려볼까, 두 선택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2018년까지만 기다려보자고 마음 먹었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는 생각이 거듭 머리를 쳐든다. 미련이다. 미련한 사랑이고 미련한 도망이다. 미련한 걸 알지만 손을 내밀어 잡는 게 낭만이다. 나는 나의 낭만 곁에서 그것이 시드는 걸 지켜보고 섰다.
2018년의 나는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내가 싫다는 것들에게 너무 많이 질척거렸다. 사랑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우울하고 쓸쓸하여 고개를 처박고 한숨을 쉬는 일이 잦았다.
올해는 달랐으면 한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삶을 살았으므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내 비록 이룬 것 없으나 바다든 육지든 당당하게 걸을 것이다.
아침이면 지난밤 나의 낭만이 얼마나 시들었는지 살핀다. 그 낭만이 모두 시들어 떨어지면 새 길을 떠나려 함이다.
2019. 1. 7. 월요일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