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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내 것이 아닌 것은 내가 아닌 곳으로

단상

by 김성호

새 휴대폰과 만났다. 끝이 보인단 걸 알면서도 미루고 또 미뤄왔는데, 마지막 팬택수리점마저 문을 닫으니 방도가 없었다. 잠김화면을 풀려면 몇번이고 버튼을 눌러야 하고 통화음질도 엉망인데다 하루에도 몇번씩 제 맘대로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폰 앞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헤어짐을 두려워하는지 절감하곤 하였다.


처음 휴대폰이란 걸 가진 2005년 이후 나는 두 차례 폰을 바꾸었다. 그때마다 나는 새 것을 갖는다는 기대감보다 정든 무엇을 잃는다는 아쉬움에 주저하고 돌아보는 일이 많았다. 휴대폰 좀 새로 사라는 참견이 따가울 때면 새것을 사봐야 지구에 어떤 도움이 되겠냐고 되묻곤 했지만,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못된단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폰인 베가아이언2는 기자생활을 시작하며 맺은 연이었다. 수습생활을 하는 동안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고 메신저를 주고받아야 했는데 직전에 쓰던 아르고폰에선 기대할 수 없는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전자기기와 관련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최기사에게 잔고장 없는 중고 스마트폰을 구해달라 했더니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 이 폰을 내밀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라는 광고카피부터가 썩 마음에 들었다고 기억한다.


어쩔 수 없어 시작한 만남이지만 맺어져야 했을 연이었다. 수많은 취재와 즐거웠던 순간, 잊지 못할 장면들이 너를 통해 이뤄졌었다. 거친 바다 위 기댈 곳 없이 흔들리던 나를 꽉 잡아준 것도 네 안에 담긴 통화들이었다. 그 모든 감사를 어떻게 네게 전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지우지 못한 목소리들을 이제 너와 함께 떠나보낸다. 잘 가거라. 가이아의 것은 가이아에게로. 내 것이 아닌 것은 내가 아닌 곳으로.



2019. 1. 21. 월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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