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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마음이 아픈 것이다

단상

by 김성호

그럴 때가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 하고 탄식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럴 땐 보통 마음이 아픈 것이다.


마음이 아프면 주변을 돌아보기 어렵다. 내 몸 하나 간수하기 벅차니 무엇에도 정신 쏟을 여유가 없다. 컵을 깨고, 기둥에 부닥치고, 바이크를 넘어뜨리고,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온갖 사고가 이어진다. 가뜩이나 힘든 삶에 왜 이런 일까지 겹치는가 원망까지 든다.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턱 밑까지 올라오면, 허리를 접고 숨을 고를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 누가 한 대 쳐주면 그냥 엎어져서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몹시 아파지다가 어느순간 아픈 줄도 모르게 된다. 사람은 무엇에나 익숙해지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는 매일 따귀를 맞았다. 나를 때린 이는 악명 높은 노처녀 수학교사였는데, 그녀는 내 턱을 잡고 치기 좋은 높이까지 들어올린 뒤 붕대로 칭칭 감은 자로 철썩 뺨을 때리곤 했다. 내 볼엔 붉게 핀 맷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녀는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관심이 없거나, 부모에게 제가 당한 일을 전하지 않을 만한 녀석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나는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었고 그녀가 담임을 맡은 그 해 그 반에서 그녀의 장난감으로 낙점됐다.


그 일 년 동안 나는 맞기 위해 학교에 갔다. 그녀가 제 맘대로 임명한 서기라는 직책은 이유없이 매를 맞는 일이었는데, 숙제를 안 해서 글씨가 삐뚤빼뚤해서 줄을 넘겨 적어서 맞춤법이 틀려서 온갖 것이 매의 이유가 됐다.


그렇게 많이 맞으면 못견디게 괴로울 것 같은데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처음엔 그렇게나 아프고 창피하던 것이 나중엔 아주 당연한 일과처럼 여겨졌다. 숙제를 빼먹지 않거나 공부를 잘 했다면 덜 맞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으니까.


요즘들어 20년 가까이 된 그때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혼자 길을 걷다가도 멍하니 상상에 빠져들던, 나보다 괴로운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들에 몰두하던, 수업 내내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지어내던 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도 나는 길을 걷다 멈춰서서 한참 숨을 고르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곤 하였다. 모두 떠난 운동장에 홀로 남아 구름을 멍하니 올려보는 일도 잦았다. 길에서 걸음을 멈추는 아이를 보거나 하늘을 올려보는 아이를 만날 때, 문득 슬픈 마음이 되는 건 아마 그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누가 따귀를 치는 일도 없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쓸쓸하여 갈피를 잡지 못한다. 지난 계절 쓸지 못한 낙엽이 뒹구는 이 차거운 거리를 나는 여태 걷다 서다 걷다 서다 하고 있다.


나는 허리를 접은 채 무릎을 짚고 서서 가만히 숨을 고른다. 나는 대체 무얼 위해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럴 땐 필시 마음이 아픈 것이다. 잠시 하늘을 보며 쉬었다 갈 일이다.



2019. 2. 12. 화요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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